Text. 윤진아 Photo. 정우철
총성이 울릴 때마다 알록달록한 실이 발사되고, 캔버스 위엔 복슬복슬 포근한 감촉의 그림이 수놓인다. 차분히 앉아서 하는 공예가 단조롭게 느껴졌다면, 우뚝 서서 총 들고 실을 발사하는 터프팅(Tufting)에 도전해보자. 세상 힙하고 다이내믹한 공예, 터프팅 클래스에 이현선 대리와 이희주 주임이 함께했다.
좌) 광주전남지사 운영부 이희주 주임, 우) 용인지사 고객지원부 이현선 대리
‘타타타타타타탕’, ‘두두두두!’, ‘다다다다!’
따발총 소리가 귓등을 때리고, 손아귀 가득 묵직한 떨림이 전해진다. 언뜻 사격훈련장 같은 이곳은 총알 대신 실을 쏘는 터프팅 공방. 터프팅(Tufting)은 천 위에 터프팅 건으로 털실을 쏘아 심는 섬유 공예다. 느린 템포에서 정적으로 이뤄지는 다른 공예와 달리 역동적으로 총을 쏘아가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수영, 야구, 베이킹, 네일아트 등등 취미 부자인 이현선 대리가 오래전부터 벼르던 터프팅 클래스가 사내 게시판 공지에 뜨자마자 빛의 속도로 사전작업이 이루어졌다. 이희주 주임의 최애 캐릭터인 ‘쿼카’로 디자인을 정하고, 오늘 원데이클래스에 앞서 이현선 대리의 집에 들러 쿼카 러그로 장식할 인테리어 포인트까지 둘러보고
왔단다. 4년 전 수원사업소에서 함께 근무하며 친해진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다 알고 있어 무덤까지 같이 가야 할 사이다. 지금은 각각 용인과 나주에서 떨어져 지내지만, 물리적 거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일 연락하며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둘 다 말도 많고 취향도 꼭 맞는 데다 희주가 너무나 귀염 뽀짝한 생명체라서 안 친해질 수가 없었어요. 어른스럽고 센스 있는 희주는 주변 사람을 참 잘 챙겨줘요. 친구가 정말 많길래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친해지고 나서 그 이유를 알았죠. 기쁜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뭐든 제 얘기 하나하나 자기 일처럼 들어주고
헤아려줘 동생이지만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모처럼 제대로 떠들 생각에 며칠 전부터 설레더라고요.”
“지난여름에 언니가 절 보러 나주까지 내려와줘서 눈물나게 반가웠어요. 우린 ‘몸은 두 개지만 심장은 하나’인 사이죠. 현선 언니의 지인들 근황까지 제가 다 아는 정도?(웃음) 언니는 제가 아는 사람 중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예요. 같이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 계속 같이 있고 싶어요. 요즘 언니가 야구에 꽂혔는데, 야구장
직관은 물론 얼마 전에는 일반인 시구까지 했어요.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으며 실행에 옮기는 언니가 참 멋지고, 닮고 싶어요.”
다양한 색상과 질감의 털실 앞에서 물감을 고르듯 신중하게 실을 고르는 두 사람. 도안을 그린 다음 터프팅건에 실을 끼운 뒤 캔버스에 총을 쏘면서 면을 메워나가면 된다. 이희주 주임은 화장실 발매트를, 이현선 대리는 자취방의 ‘버터브라운 인테리어’를 완성할 벽걸이 러그를 만들기로 했다. 실전에 앞서 안전한 사용법을 익히는
과정은 필수! 실을 넣고, 총을 쏘는 방향과 사용법까지 익혀보는 몸짓에 비장함이 묻어난다. 어느 정도 감을 익혔다면 작은 면적부터 채워나가면 된다. 쿼카의 눈, 코, 입, 손, 발, 몸통 순으로 차례차례 총을 쏘는 기분이 희한하게 미안하다.
“총을 조금씩 천천히 쏘며 방향을 틀어야 곡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요. 중요한 건 총 쏘는 속도를 비슷하게 유지해야 실이 일정한 밀도로 박힌다는 겁니다. 천을 세게 누르면서도 적당한 속도를 내야 너무 빽빽하거나 성기지 않게 심어져요.”
뾰족한 총 끝을 실과 함께 천에 끼운 다음, 방아쇠를 당기듯 스위치를 누르며 빠르게 움직이자 순식간에 캔버스에 직선의 털실이 박혔다. 아래에서 위로, 옆으로 연이어 옮겨가며 반복하니 일자의 선들이 모여 면이 만들어졌다.
“코.. 코털이 너무 길어.. 꼭 콧물 나는 것 같잖아.”
“눈물도 흐른다. 피눈물인가? 지옥에서 온 쿼카 같지만 다듬어주면 괜.. 괜찮아지겠지?!”
총을 꽂은 뒤 밀면서 실을 박는데, 이때 너무 빠르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해줘야 촘촘하게 박힌다. 총을 쏘는 반대 면에 그림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수시로 뒷면을 확인하며 엉킨 실을 뽑아주는 작업도 필수! 실이 헐겁게 박혀 빈곳이 있다면 총을 몇 번 더 쏴주면 된다.
과감한 터치와 거침없는 총질로 완성하는 터프팅 공예는 예상보다 훨씬 속도감 있게 진행돼 잡생각 할 틈이 없다. 실을 쏘는 즉시 결과물이 바로바로 튀어나오는데, 눈으로 확인하며 작업할 수 있어 지치지 않고 완성하는 원동력이 됐다. 색색의 실을
갈아 끼우며 총 쏘는 데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귀염 뽀짝한 쿼카가 “뀨~” 모습을 드러냈다. 터프팅은 완벽주의로부터 잠시 해방될 수 있는 공예이기도 하다. 선이 조금 찌그러져도, 맞닿은 실의 색이 예상과 달리 안 어울려 보여도, 복슬 털의 마법 덕에 태연하게도 그럴듯한 완성품이 나타난다. 오랜 시간 총을 든 팔이
욱신거렸지만, 귀여운 쿼카를 보자 고통은 이미 잊힌 지 오래다.
“털이 너무 수북한 거 아냐? 울버린인 줄!”
“선생님, 우리 쿼카 손가락 다 붙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 너무 불쌍해서 못 보겠다. 이거 동물보호단체에서 고소당할 것 같은데….”
실의 높이가 같도록 튀어나온 부분을 가위로 잘라 정리하면 끝이다. 어째 총 쏘는 시간보다 다듬는 시간이 더 걸리는 듯했지만, 무사히 도안 그대로의 쿼카가 완성됐다. 알록달록 복슬복슬한 털실의 감촉에 마음까지 포근해진다는 두 사람. 함께한 추억을 박제한 러그까지 사이좋게 나눠 가졌으니, 다시 만날 때까지 서로의 온기를
기억할 것이다.
타격감 예술인데요? 정식으로 사격을 배워볼 판입니다. 하하! 총 쏘는 액션의 결과물로 인테리어 소품이 나온다니, 취미활동의 신세계네요. 오랜 시간 총을 들고 있다 보니 팔이 아팠지만, 그 통증을 다 잊을 만큼 신나고 재밌었어요. 밋밋한 벽에 걸어 포인트를 주기 좋을 것 같아서, 조만간 부피가 더 큰 인테리어 러그 만들기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총을 다루는 게 익숙지 않아 천에 계속 구멍을 냈는데, 강사님이 수시로 심폐소생 해주셔서 쿼카를 지킬 수 있었어요.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배경 채울 땐 실을 한 번도 안 빠뜨렸다고 칭찬받았죠. 섬유공예는 단조롭고 지루한 작업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이건 총 쏘면서 하니까 스포츠라고 느껴질 만큼 역동적이네요. 이색취미로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