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강진우 문화칼럼니스트 Photo. 넷플릭스 <지구상의 위대한 국립공원>
국립공원은 단순한 자연보호구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국립공원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은 지금껏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벌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경이로운 생태계를 폭넓게 조명한 아름다운 다큐멘터리가 있으니,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내레이션을 맡아 더 큰 화제가 된 <지구상의 위대한 국립공원>이다.
해변에서 파도를 타는 하마들이 있다. 뚱딴지 같은 소리가 아니다. 광활한 열대 우림과 대서양이 맞닿아 있는 아프리카 가봉의 로앙고 국립공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실제 풍경이다. 이곳에 사는 하마들은 낮 동안 해변 근처의 호수에 머무르다가,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바다로 향한다. 서핑을 즐기기 위함이다. 서핑보드만 없을뿐,
이들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한참을 유영한다. 바닷물은 피부에 붙은 기생충을 없애고 상처 부위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게 한참 바다 수영을 즐긴 하마는 느긋하게 육지로 돌아와 밤새도록 풀을 뜯으며 만찬을 즐긴다. 여느 사람들이 꿈꾸는 한없이 여유로운 삶을 가봉의 하마가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남부의 야쿠시마섬에 있는 야쿠시마 국립공원에는 본토의 동물들보다 몸집이 작은 동물들이 많다. 몸길이 90cm 남짓의 일본사슴도 그중 하나. 이들은 주로 풀과 나뭇잎을 먹지만,
때때로 당분이 높은 나무 위 열매를 먹기도 한다. 나무를 탈 능력이 없는데도 말이다. 열매가 먹고 싶은 날이면, 이들은 은근슬쩍 일본원숭이 무리 곁으로 다가선 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나무에 오른 일본원숭이들은 열매를 먹으면서 상당량을 바닥에 떨어트리는데, 이 열매들은 땅에서 꿋꿋하게 대기하던 일본사슴의 몫이다. 장난기 넘치는 일본원숭이들은 종종
일본사슴의 등 위에 올라타기도 하는데, 일본사슴은 별 저항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달콤한 열매를 떨어트려 준 것에 대한 일종의 대가인 셈이다.
국립공원이 없었다면 이처럼 자연 속에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산꼭대기부터 바다 밑바닥까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시대이기에,
사람의 개입을 막고 생태계가 있는 그대로 자생하도록 보호하는 국립공원의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22년 4월에 공개된 5부작 다큐멘터리 <지구상의 위대한
국립공원>은 그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국립공원의 천태만상을 가감 없이 담아낸 수작으로 손꼽힌다.
1872년 미국이 와이오밍주 북서부와 몬태나주 남서부, 아이다호주 남동부에 걸친 약 9,000㎢의 방대한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전 세계는 생태계 보존이 필요한 지역을 속속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 시작,
현재 육지의 약 15%와 바다의 8%가 국립공원화됐으며 그 범위는 꾸준히 커져 나가고 있다.
국립공원은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국립공원 및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열대우림에는 육지 생물의 절반 이상이 살아가고 있으며,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한반도 생물종의 42.3%가 국립공원을 터전으로 삼는다. 혹자는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면 인간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묻기도 하는데,
지구상의 생물들은 실제적으로 인간에게 이로운 영향을 선사한다. 최근 전 세계적 현안으로 떠오른 기후변화에 대응해 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지금 당장 우리의 몸을 낫게 하기도 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약물의 약 25%가 열대 우림에서 발원했으며, 지금도 자연 속에 숨겨진 새로운 약물 자원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고 있기 때문.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도 상당하다. 팍팍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휴가를 내고 자연 속으로 떠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구상의 위대한 국립공원>은 앞서 언급한 국립공원 외에도 칠레 파타고니아, 케냐 차보, 미국 몬터레이만, 인도네시아 구눙 레우스르 등
전 세계 국립공원이 갖춘 놀랍고도 독특한 생태계를 각 회차에 걸쳐 자세하게 보여준다. 화면 속 대자연에 흠뻑 젖어들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지구에는 인간 외에도 수많은 동식물이 살아가며, 이들이 존재해야 인간 또한 역사를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