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Photo.진우석 여행작가
전남 고흥은 청정 자연을 잘 간직한 고을이다. 높은 산과 바다, 크고 작은 섬이 어우러진 다도해가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다. 쑥섬은 고흥 최남단 외나로도 옆에 자리한 작은 섬이다. 산은 높이 83m, 해안선 길이 불과 1km 정도밖에 안 되지만, 난대원시림과 사계절 꽃이 피는 정원을 품은 보물섬이다. 쑥섬을 한 바퀴 돌아보며 남도의 늦가을을 즐겨보자.
하늘에서 본 쑥섬. 숲이 빽빽한 곳이 난대원시림이고, 능선에 정원이 있다. 섬과 바다가 어우러져 풍광이 빼어나다.
고흥 시내에서도 동남쪽으로 40분쯤 달리면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 닿는다. 가는 길에 고흥 최고 명산인 팔영산과 마복산이 수려한 해안과 어우러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쑥섬은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 건너편으로 있는 섬이다. 배를 타면 불과 5분이면 도착한다. 배에 올라 풍경을 감상할 틈 없이 내려야 한다.
쑥섬 선착장에 고양이가 그려진 포토존이 반긴다. 포토존 뒤로 커다란 갈매기 조형물이 우뚝한 카페 건물과 아담한 집들이 보인다. 섬은 봄철이면 질 좋은 쑥이 많이 나서 쑥섬이란 이름을 얻었다. 갈매기카페에 닿자 “야옹~”하고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한 마리만 보이더니 어느새 네댓 마리가 나와 반겨준다. 최근
쑥섬은 고양이들이 많아 고양이의 천국으로 알려졌다.
쑥섬 구경은 갈매기카페에서 오솔길 따라 난대원시림, 능선에 자리한 꽃밭 정원, 신선대 등을 둘러보고 카페로 돌아오면 된다. 넉넉하게 1시간 30분쯤 걸린다. 오솔길로 들어서자 울창한 숲이 펼쳐지는데, 여기가 마을의 당산인 난대원시림이다. 빽빽한 숲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와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오솔길 짧은 구간에 아름드리 후박나무, 푸조나무, 육박나무 등이 우뚝하고, 울창한 대숲도 보인다. 유독 눈에 띄는 게 육박나무다. 수피의 문양이 해병대 군복의 문양을 닮아 ‘해병대나무’, ‘국방부나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난대원시림에서는 귀한 육박나무를 볼 수 있다. 몸체에서 수직으로 솟구친 새로운 줄기는 껍질이 벗겨지지 않는다.
오솔길을 지나 능선에 올라붙으면, 시야가 열리면서 수려한 해안이 펼쳐진다. 그래서 ‘환희의 언덕’이다. 벤치에 고양이 한 마리가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옆에 앉아도 도망가지 않고, 등을 비비며 재롱을 부린다. 고양이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게 쑥섬의 매력이다.
이제 휘파람이 절로 나는 능선길이다. 하나둘 꽃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꽃밭 가득한 정원이 나온다. 능선에 정원이 있는 게 신기하다. ‘별정원’, ‘달정원’ 등 이름도 예쁜 정원에는 300여 종의 꽃이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다. 특히 6월에 피는 수국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정원은 바다를 품었다. 화려한 꽃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다.
앞쪽으로 나로도가 손에 잡힐 듯하고, 반대편으로 쪽빛 바다, 멀리 손죽도와 초도가 아른거리는 풍광은 가슴 속까지 후련하게 한다. 이 정원은 섬밖에서는 보이지 않기에 ‘비밀의 정원’이라고도 불린다.
정원은 김상현·고채훈 씨 부부가 20년 넘게 가꿔왔다고 한다. 부부는 틈나는 대로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꿨다. 가뭄이 들 때도, 장맛비가 내려도 계속했다. 덕분에 쑥섬은 전남 1호 민간 정원으로 지정됐다.
정원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도 있지만, 능선을 계속 따라야 볼거리가 많다. 정상 직전에는 남자산포바위와 여자산포바위가 있다. 산포바위는 옛사람들이 놀던 곳을 가리킨다. 동네 처녀와 총각이 몰래 만나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정상은 높이 불과 83m다. ‘에베레스트 8,848m, 백두산 2,744m, 한라산
1,950m. 별 차이가 없군요’ 라고 쓰인 푯말이 재미있다. 남도 특유의 능청과 여유가 느껴진다.
환희의 언덕에서 본 수려한 해안 풍경
정상을 지나면 등대를 찾아간다. 작은 등대 아래에 갯바위로 나가는 길이 있다. 갯바위 일대는 수려한 기암절벽이 펼쳐진다. 갯바위 위에 강태공 한 분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고기 많이 잡았냐고 물어보니,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느긋하다. 여기서는 꼭 물고기를 못 잡아도 좋겠다. ‘바다멍’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이곳 해변에 신선대가 있다. 수직의 해벽 가운데가 푹 들어가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신선이 내려와 거문고를 타고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풍광이 좋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는 나무들이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가지가 울퉁불퉁한 후박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고, 해변 동백숲 앞 벤치에서도 쉬었다. 쑥섬에서는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다. 마을에 도착하면 돌담길이 볼만하다. 골목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이 정겹다. 돌담에서 고양이가 꼬리를 들어 올리고 사뿐사뿐 걷는 게 꼭 발레하는
것 같다.
마을의 해변 정자에 할머니 한 분이 계셔 말을 붙여봤다. “동무 둘이 있었는디. 다 요양원에 갔어요. 이제 섬에 할머니는 나밖에 없어. 심심해 종일 요로코롬 있어요.” 김숙희 할머니는 연세가 92세다. 19살에 나로도에서 시집와 평생을 쑥섬에서 살았다고. 사진을 찍으니 웃어 주신다. 할머니와 말동무하면서 쑥섬 여행을
마무리한다.
정원의 코스모스 꽃밭에는 고양이 조형물이 서 있다. 고양이가 툭 등을 건드리는 것 같다.
갈매기카페 2층 창문으로 본 마을 풍경
쑥섬은 마치 고양이 걸음처럼 느릿느릿 걷기 좋다. 갈매기카페 옆 오솔길을 출발점으로 비밀 정원, 신선대 등을 거쳐 원점으로 회귀한다. 1시간 30분쯤 걸리며, 갈매기카페에서 차를 한잔하며 바다를 바라보는 맛도 일품이다.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쑥섬 가는 배가 1일 9~10회 다닌다.
쑥섬의 갈매기카페에서 식사할 수 있지만,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 근처에 맛집이 많다. 서울식당의 삼치 코스 요리가 일품이고, 나로식당은 백반을 잘한다. 나로도회센터에서 싱싱한 자연산 활어를 살 수 있다. 숙소는 최근 문을 연 명품무인호텔이 깔끔하다.
쑥섬은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사는 섬이다. 20여 명의 주민보다 30여 마리인 고양이가 더 많다. 쑥섬을 걷다 보면 고양이를 자주 만난다. 벤치에서 졸고 있고, 돌담 위를 유유자적 산책하고, 어떤 녀석은 달려와 등을 비비곤 한다. 주민들이 길고양이를 키우며 적적함을 달랜다. 마을에 고양이 집과 캣타워 등 놀이시설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