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윤진아 Photo. 정우철
바람이 나긋하더니 ‘훅’하고 봄이 들어왔다. 곱단한 한복을 입은 여행객들의 웃음소리가 두둥실 날아다닌다.
모처럼 환한 커플룩을 맞춰 입은 우리도 꽃같이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기를!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전주에서 이재훈 팀장과 김은지 대리 가족이 특별한 시간여행을 하고 왔다.
(왼쪽 위 부터) 김은지 대리, 이재훈 팀장, 첫째 이서종 군, 둘째 이유종 군
며칠 새 봄꽃이 올망졸망 부풀어 올랐다. 찬바람과 더운 공기가 뒤엉킨 계절을 비집고 나와 다시 새 삶을 일깨워볼 시간! 흐드러진 꽃 무더기 속으로, 제 키를 훌쩍 넘는 기와담장 너머로, 형제가 나란히 발을 치켜들었다. 아이가 새 문턱을 용기 있게 뛰어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뭉클하다. 매일 집에만 있던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되기를, 아빠 엄마는 어쩌면 아이들보다 더 설레는 마음이라고 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배가 많이 부른 상태로 왔던 전주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종종 그리웠어요.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는 멀리 움직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한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못 했는데, 그새 훌쩍 자라 초등학생이 된 첫째, 예비 초등학생 둘째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될 거라 기대합니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못다 한 대화를 나누는 가족의 표정이 봄꽃처럼 환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한옥스테이 숙소는 한옥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해 전주 명소를 두루 탐험하기에 제격이다. 마루 아래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 툇마루 위 물레, 한국식 경대 등등 신기한 전통 소품의 행렬에 아이들은 이미 마음을 빼앗긴 듯하다. 은은하게 스며드는 고가구 향기에 잠시 넋을 놓았다가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만끽하러 마당으로 나갔다.
옛 시간의 한 덩어리를 떼어 옮겨놓은 듯한 전주한옥마을은 한옥 700여 채가 밀집한 국내 최대 한옥마을이다. 흙과 돌을 섞어 만든 흙돌담, 장독대와 바깥행랑채, 솟을대문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담는 김은지 대리의 손길이 분주하다. 본가에서 큰 딸인 김은지 대리는 결혼 전 부모님과 동생들을 위한 사진사로 활약했다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들과 남편의 전담 사진사가 됐다. 늘 가족을 챙기는 아내의 사진은 이재훈 팀장이 열심히 찍어주고 있단다. 어느덧 결혼 7년 차를 맞은 부부의 역사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제가 다른 부서로 가면서 당시 신입사원이던 김은지 대리가 후임으로 왔어요. 인수인계하며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됐는데, 단아한 인상과 침착한 성격에 반해 ‘아! 내가 결혼할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낯가림 많은 이재훈 팀장이지만 ‘내 반쪽’이라는 직감에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었고, 사내 보안을 위해 ‘은지’의 ‘지’, ‘재훈’의 ‘훈’의 이니셜을 따 ‘JH’라고 연락처를 저장하는 치밀함까지 보이며 가슴 뛰는 연애가 시작됐다. 한겨울에 올린 결혼식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식 준비를 위해 새벽같이 출발했는데, 혹한 때문에 기계 결함이 생겨 차 뒷문이 잠기지 않더라고요. 신부인 제가 차 문을 부여잡고 분당에서 강남까지 30분 넘는 거리를 이동하면서 ‘우리, 무사히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절로 들었죠(웃음). 긴장 늦추지 말고 잘 살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애써 마음을 다스렸던 기억이 나요.”
사랑에 빠진 남자의 변신은 무죄, 그 정성에 감동한 여자의 폭풍눈물도 무죄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재훈 팀장이 부른 축가에 김은지 대리는 이벤트 내내 눈물을 흘렸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했지만 울다 웃다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에 가슴 뻐근한 보람을 느꼈단다. 이날의 즐거운 이벤트처럼 부부는 어떤 난관도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꿈꿔온 미래를 향해 차근차근 전진해나가는 참이다.
다른 햇살, 다른 공기가 차오르는 이맘때면 경기전에는 홍매화가, 오목대에는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한옥마을 일대를 새단장한다. 시대를 건너듯 옛길을 천천히 걸으며 전주가 품고 있는 조선을 만나러 갔다. 곤룡포 자락을 휘날리며 역사 속에 스며든 여행객들의 모습에 덩달아 웃음이 난다. 경기전 어진박물관에서 마주한 태조는 풍채가 좋고 낯빛이 밝다. “경기전은 경사스러운 터에 지어진 궁궐이라는 뜻이야. 왕의 초상화를 어진이라고 하는 건 서종이도 알고 있지?” 태조의 용안을 마주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빠가 알기 쉽게 역사를 풀어놓는다. 길을 사이에 두고 경기전과 마주한 전동성당도 아빠 엄마의 설명을 듣고 나면 더욱 멋지게 느껴진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몰랐던 역사가 숨 쉬고 있어 저희도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입니다. 오늘 처음 배운 전통놀이에 흠뻑 빠져 제기가 땅에 떨어지기만 해도 웃는 아이들 덕분에 없던 힘도 솟아나네요(웃음).”
김은지 대리는 최근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가 생겼고, 곧이어 2년 터울의 둘째를 가진 터라 여유 있는 신혼생활을 경험해보진 못했다. 맞벌이하면서 양가 도움 없이 육아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의 서종이는 아빠를 두루 닮았지만 머리카락만큼은 엄마의 생머리를 지녔다. 붙임성 좋고 애교 많은 유종이는 엄마를 닮았지만 머리카락은 아빠의 곱슬머리를 가졌다. 둘을 사이좋게 빼닮은 아이들이 아빠 엄마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처럼 실컷 웃고 살게 해주고 싶다. 손 꼭 맞잡고 우리만의 역사를 일구는 가족 곁으로 환한 봄기운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호남 최초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품고 있다. 로마네스크+비잔틴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전통 한옥 사이에서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높이 솟은 고탑 아래 종탑이 있으며, 사진에 성당을 꽉 채워 담으면 유럽에서 찍어왔다 해도 모른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전주 하면 떠오르는 비빔밥은 한옥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지만, 최근엔 SNS를 타고 경기전 일대의 육전과 문어꼬치 등 길거리 음식들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풍남문 뒤쪽 남부시장에 가면 피순대, 순대국밥, 콩나물국밥 등 전주 대표 먹거리가 그득하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1길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