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
탄소중립은 전 세계 도시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필수과제가 됐다. 기후변화의 시대에서 환경을 도외시한 도시발전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사상누각에 불과한 탓이다. 과연 어떤 도시가 이 난제를 가장 먼저 풀어낼까. 세계 각국은 덴마크 코펜하겐을 첫손에 꼽는다. 오는 2025년까지 탄소중립도시를 실현하겠다는 게 코펜하겐의 목표. 이를 위해 에너지 생산과 소비, 교통, 행정 등 도시 전반의 스마트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21세기형 지속가능 도시발전 모델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동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데르센의 고향으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도 빠짐없이 이름을 올린다. 이런 코펜하겐이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도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환경, 삶의 질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스마트에너지시티의 롤모델’로서 말이다.
이 같은 코펜하겐의 변신은 지난 2012년 본격화됐다. 덴마크 정부가 오는 2025년까지 코펜하겐을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당시 코펜하겐은 지구촌 모든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라는 외적 과제와 도시화라는 내적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도시화로 10년 내 20%의 인구 증가가 예견됨에 따라 그로 인한 주거·교통·일자리·에너지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면서 기후와 날씨 변화라는 환경 이슈까지 대응할 수 있는 도시발전 모델이 필요했다. 오랜 기간 환경을 중시해왔던 덴마크가 찾은 돌파구가 바로 ‘탄소중립’이었던 것이다.
물론 탄소중립은 많은 도시의 지향점이다. 탄소중립을 천명한 도시만 지금껏 70여 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달성 시점을 2050년으로 잡고 있다. 그만큼 탄소중립은 쉽게 도달키 어려운 과제다.
탈(脫) 탄소를 위한 화석연료 퇴출
코펜하겐은 2025년 탄소중립이라는 ‘넘사벽’급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크게 3개 분야에서 혁신을 추진했다.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모빌리티·도시행정이 그것이다. 이 중 코펜하겐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분야는 에너지 생산. 전력·난방에너지를 화석연료에서 얻어왔던 탓에 도시에서 발생하는 약 200만 톤의 탄소발자국 중 에너지 생산 분야의 비중이 80%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코펜하겐은 화석연료를 태양광·풍력·바이오매스·지열에너지로 100% 대체키로 결정했다.
화석연료 퇴출의 선봉장은 풍력발전이 맡았다. 대서양으로부터 강력한 편서풍이 불어오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2025년까지 100개(360㎿)의 대형 풍력 터빈을 신규 설치할 예정이다. 풍력 분야의 대표적 성과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해상풍력단지인 미들그룬덴으로, 20개의 2㎿급 풍력 터빈이 3만 2,000여 가구에 필요한 9,000만kWh의 전력을 연간 생산 중이다. 지난 2019년 가동을 시작한 아마게르 열병합발전소(ARC)도 ‘환경과의 동행’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다. 도시 쓰레기와 폐기물을 연료로 사용하는데, 연간 약 40만 톤을 소각해 3만 가구의 전력과 13만 가구의 지역난방을 책임지고 있다. 소각 후 남은 연 10만 톤의 재는 도로공사에 재활용된다. 아울러 기존 석탄 열병합발전소들도 벌목과 목재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목재 펠릿)을 연료로 사용하도록 속속 전환되고 있다.
이렇게 코펜하겐은 풍력과 바이오매스 열병합발전만으로 도시의 총 전력소비량을 초과하는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포부다. 덧붙여 2025년 도시 전력소비량의 1%를 태양광으로 충당한다는 방침에 따라 공공건물에 6만㎡ 부지에 태양전지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자전거의 파라다이스
탄소중립 도시로 나아가려면 모빌리티, 즉 교통 분야의 화석연료 퇴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구현할 가장 직관적 방안은 신재생에너지 차량의 보급 확대다. 코펜하겐 역시 다르지 않다. 2025년까지 대중교통을 신재생에너지 차량으로 전량 대체하는 한편, 승용차의 신재생에너지 차량 비중을 20~40%로 높이고자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 무공해 수소·전기버스 외의 신규 버스 도입을 전면 금지하기도 했다.
다만 코펜하겐은 자전거라는 아날로그적 수단을 모빌리티 혁신의 ‘열쇠’로 삼았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도시 면적이 약 88㎢에 불과한데다 이미 주민의 절반이 출퇴근시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는 이상적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실제로 9년여의 자전거 이용 여건 개선 결과, 현재 코펜하겐의 자전거 수는 주민수보다 많아졌다. 자동차와 비교하면 5배 수준이다. 또 교외와 도심을 연결하는 자전거 고속도로와 운하를 횡단하는 17개의 자전거 교량을 포함, 자전거 전용도로의 길이가 1,000㎞에 육박한다. 도시 어디든 자전거로 단 20분 만에 이동 가능한 인프라가 구축된 것이다.
코펜하겐이 '자전거 도시'가 된 데에는 '자동차=경제적 손해'라는 공식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자동차 운행을 많이 할수록 세금을 더 물어야 하고, 주차 등에 불편을 겪게 된다. 자동차 주차장은 찾아보기 힘들고, 만약 찾았더라도 매우 비싼 주차비를 내야만 한다. 거주자의 연간 주차비 역시 크게 인상됐다. 이를 통해 자동차 수요를 억제하고, 도보·자전거·대중교통의 시내 이동분담률을 75% 이상으로 높이는 게 궁극적 목표다.
살아 있는 스마트시티 연구소
덴마크는 지난해 유엔이 발표한 ‘2020년도 전자정부평가’에서 한국을 제치고 193개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한 스마트 강국이다. 코펜하겐이 탄소중립 도시로 가는 길에는 이러한 덴마크의 스마트시티 역량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코펜하겐시 기술환경부 산하 솔루션 랩(CSL)이 주도하는 ‘스트리트 랩’ 프로그램이 그 실례다. IT기업 시스코, 이동통신사 TDC 등이 공동참여하고 있는데 거리 곳곳에 설치한 사물인터넷(IoT) 센서로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한 뒤 대기질 모니터링, 주차공간 탐색, 교통체계 및 쓰레기 수거 최적화, 유동인구 분석 등의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코펜하겐은 이에 더해 구글, 덴마크 실외조명연구소(DOLL), 덴마크 공대, 에너지공기업 오스테드 등과도 스트리트 랩과 유사한 거리 실험실을 조성해 지능형 옥외 조명, 자전거 이동성 저해요인 분석, 공공장소 내 바이러스 확산 분석, 인공지능(AI) 에너지 절약 솔루션 등을 연구 중이다. 코펜하겐 자체를 살아 숨쉬는 스마트시티 연구소로 만든 셈이다.
이제 결승점까지 5년여의 시간이 남았다. 그날, 코펜하겐이 축배를 들어 올릴 수 있을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낙관적 입장을 견지한다. 적어도 탄소중립에 매우 근접한 지점으로의 도달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난방 분야 탄소배출 저감률 45%, 자전거 이용률 63%, 분산형 열병합발전 네트워크 연결률 98% 달성과 같은 가시적 성과들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을 기점으로 그동안의 적응적 탄소 감축에서 능동적 대응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우리에게 코펜하겐이 걸어왔고 앞으로 걸어갈 발자취는 하나의 본보기이자 교과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