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그렇다'
- <풀꽃> 시인 나태주
오래된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달릴 수 있어 좋다’는 공주의 작은 골목길을 지나 공주풀꽃문학관으로 향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차 한잔을 나눠 마시며 시를 얘기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행복을 나눈다.
시인 나태주의 일상은 오늘도 그렇게 천천히 흘러간다.
50년 동안 시를 짓고, 43년을 교단에서 보내셨어요. 공주문화원장이자 한국시인협회 회장이기도 하시고요. ‘나태주’란 이름 앞에 붙는 많은 수식어. 스스로는 어떻게 불리길 원하세요?
시인, 그냥 시인이 좋아요. 학교에 재직했을 때는 교사였고, 공주문화원에서는 원장, 한국시인협회에서는 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죠. 그런데 이건 말 그대로 직함이에요. 그 자리, 그 위치에 있기에 따라오는 직함. 그런데 시인은 시인(時人)이잖아요. 시를 쓰는 사람. 내가 어디에 있든 시를 쓰면 시인인 거예요. 여기서 시인이 명심해야 할, 시인의 자격이 하나 있어요. 인간다워야 한다는 거죠. 시‘인’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작가로 불리는 것도 안 좋아해요. 시인이 제일 좋아요. 말할 것도 없이.
대중들은 시인 나태주 앞에 또 하나의 수식어를 붙여서 ‘풀꽃 시인’이라고 부르는데요. ‘풀꽃’이라는 시는 어떻게 지어졌는지 궁금합니다.
공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교장으로 43년의 세월을 보냈어요. 학교에 있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예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이었죠. 종종 아이들과 학교 뒤뜰로 나가 풀꽃을 그리곤 했는데,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잘 그릴 수 있느냐” 묻더라고요. 그 대답이 바로 시 ‘풀꽃’이에요. “풀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단다. 그리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지. 얘들아, 너희도 그렇단다.” 제가 교단에 서는 동안 아이들한테 수없이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시는 어려우면 안 돼요. 시는 쉬워야죠. 시는 길고 복잡하면 안 됩니다. 짧아야죠. 대신 그 짧고 쉬운 문장 안에 반드시 ‘발견’이 있어야 합니다. 그 발견이 나만 아는 대단한 발견이 아닌, 남들도 다 아는 발견이어야 하죠. 무슨 얘기냐면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지요. 그런데 그 이전에는 사과가 아래로 안 떨어졌나요? 사과는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거죠. 좋은 발견은 그런 거예요. 누구나 다 알지만, 그냥 지나치는 것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 이름을 지어주는 거죠. 그러려면 오래 보고 자세히 봐야 합니다. 그러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꽃 속에서 저는 ‘너도 그렇다’는 발견을 하고 참 기뻤습니다. 그 발견이 다른 이들의 마음에도 행복으로 전해졌다니 이 또한 기쁜 일이지요.
그럴수록 천천히, 자세히 볼 수 있는 여유를 자신에게 주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자세히 봐야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지요.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반성하고 검열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주라는 거예요. 너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요? 출퇴근 시간 버스 안에서, 혹은 길을 걸으면서 아주 잠깐 시간을 내면 되는 거예요. 자기 전에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일기를 쓰는 것도 좋고요. 나를 오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나를 사랑하게 될 겁니다. 그때 비로소 주변도 사랑할 수 있게 될 테고요.
자동차가 없으니까요.(웃음) 운전면허도 없어요. 가끔 농담도 합니다. ‘나’ 좀 ‘태’워 ‘주’세요. 내 이름이 나태주니까. 차를 운전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고독해요. 정면만 주시하고 빠르게 달리죠. 그런데요. 자전거 위에 앉으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어요. 천천히 두 바퀴가 구르면 바람이 불어오고 아름다운 풍경이 지나가고… 그렇게 자연과 교감을 하게 돼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잠깐 멈춰서 사진도 찍고 시가 떠오르면 메모도 하고 그래요. 특히 공주가 자전거랑 아주 잘 맞아요. 아름다운 자연에, 자동차는 못 다니는 좁은 골목길도 많거든요.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 있을까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마음을 가지는 거죠. ‘나’를 이롭게 하면서 동시에 ‘너’도 이롭게 한다는 뜻인데요. 나를 이롭게 하되 나만 이로우면 안 되고 ‘이타’, 그러니까 너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여기서 너는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에요. 주위의 많은 사람과 자연, 이 모든 게 ‘너’라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지금 내 앞에 사람은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 그리고 자연까지도 이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이도, 지구도, 우주도 소중하니까요.
그럼요. 조용히 사라지는 것. 하루하루의 일과가 조용히 사라지기 위한 준비예요. 교장으로 재직 중일 때 1년 열두 달 운동장의 낙엽을 모아 태웠어요. 가을 낙엽은 재를 안 남기고 잘 타는데, 7, 8월 태풍에 떨어진 낙엽은 냄새만 독하고 잘 안 탑니다. 그 안에 여전히 초록빛 엽록소가 남아 있어서라고 하더라고요. 미련이 남은 거죠. 그래서 한여름 태풍으로 떨어진 낙엽은 괜히 안타깝고 애달프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살고 떨어지는 가을 낙엽을 볼 때는 ‘때가 되어서 떨어지는구나’ 생각하게 돼요. 지는 모습마저도 아름답죠. 그렇게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사라지는 것. 그것을 위해 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게 제 꿈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난 독자들에게 덕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시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가족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가족 속에 나의 인생이 있고, 나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행복은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안에 있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저 멀리 있는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지 마세요. 일상 속 작은 행복을 귀하게 여기세요. 내가 행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너와 함께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합니다.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지역난방공사 임직원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시가 하나 있는데요. 집사람과 산책하다가 지은 ‘행복’이라는 시입니다.
글 박향아, 사진 이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