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뉴딜형 쿨루프 청년일자리 양성사업
초록 지붕을 하얗게 바꾸는 것만으로 많은 것이 변한다. 젊은 예술가에게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꿈꿀 수 있는 용기가 되어주고, 옥탑방에 사는 누군가에게 조금은 시원한 여름을 선물하며,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혀주는 고마운 바람이 되어준다. 기후변화로부터 환경을 지키는 시원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뜨거운 노동의 현장을 소개한다.
도심 속 지붕을 하얗게 칠하는 이유
높은 곳에 올라 도심을 내려다보면 대부분의 지붕이 녹색을 띠고 있다. 건물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옥상이나 지붕마다 녹색 방수제를 칠해놨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지붕을 덮은 푸른빛이 시원하고 싱그럽게 느껴지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녹색 방수제로 덮인 지붕은 열을 그대로 흡수해 한여름에는 표면 온도가 60~70℃까지 올라간다. ‘지글지글 끓는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만큼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초록 옥상은 그 열기를 그대로 머금은 채 밤을 맞이하고, 야속하게도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선사한다.
쿨루프(Cool Roof)란 말 그대로 ‘시원한 지붕’이라는 뜻으로, 초록 방수제가 칠해진 건물의 지붕이나 옥상에 반사율이 높은 흰색 도료를 칠해서 건물 온도를 낮추는 공법이다. 녹색을 흰색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표면 온도는 10~30℃, 건물 실내 온도는 2~3℃까지 낮출 수 있다.
이렇게 쿨루프 시공만으로 삶의 보금자리가 한결 시원해진다. 여기에 에어컨 등 전기사용량이 적어져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은 우리 집과 도시, 더 나아가 지구가 시원해진다.
쿨루프로 옥상의 열을 식혀주는 작고 사소한 노력이,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히는 간단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한난이 ‘그린뉴딜형 쿨루프 청년일자리 양성사업(이하 쿨루프 청년일자리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다 쿨루프 청년일자리 사업은 지난해 한난이 시행한 ‘대국민 일자리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쿨루프 시공 활동가 양성을 통해 새로운 청년일자리 모델을 구축하고, 옥탑방 청년 거주자들에게는 무료로 쿨루프 시공을 해줌으로써 좀 더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한난은 기후변화를 연구하고 대응법을 찾아 실천하는 ‘십년후연구소’의 ‘지구를 식히는 쿨루프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쿨루프협동조합)’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한편 쿨루프 시공 활동가인 ‘롤링베어스’를 양성하기 위해 희망자를 모집하고, 쿨루프 무료 시공 혜택을 받을 옥탑방 청년 거주자를 모집하였다. 롤링베어스는 ‘구르는 곰이 지구를 식힌다’는 모토로 초록 지붕을 하얗게 칠하는 활동가들을 말한다. 쿨루프 시공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몇 개월만 참여하는 일시적인 일자리인 만큼 자신의 본업과 병행할 수 있고, 그 수익으로 꿈을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청년예술가, 프리랜서,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 등에게 매력적인 일자리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나와 이웃, 그리고 지구를 위하는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점에서 많은 청년이 ‘지구를 식히기 위해 구르는 곰’이 되겠다고 나섰다. 30명 모집에 100여 명 가까운 신청자가 몰려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쿨루프 어벤저스, ‘롤링베어스’의 활약
코로나19로 멈춰선 세상, 집에 머무는 시간이 부쩍 길어지면서 옥탑방 거주자 등 취약계층에
게 한여름 무더위는 또 다른 재난이 되고 있다. 유난히 무더웠던 6월의 어느 날, 합정동의 빌라
옥상으로 롤링베어스가 출동했다. 오늘 초록빛 옥상은 이들의 손길을 거쳐 지구를 식히는 하
얀색 옥상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오전 7시.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이른 시간임에도 옥상은 여름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상태. 쿨
루프 시공을 위해 옥상 곳곳에 놓인 물건들을 치우고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사이, 롤링베어스
의 얼굴은 벌써 땀으로 가득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가 원망스러울 법도 하지만, 이을
호 씨는 “비가 안 와서 다행”이라며 작업을 서두른다. “비가 오면 오늘 작업에 차질이 생기고,
또 다른 신청자의 쿨루프 작업은 그만큼 늦어질 테고, 그만큼 무더위로 힘든 날을 보내야 하니
까… 우리가 조금 더운 게 낫죠.”
옥상 표면의 온도, 28℃에서 21℃로
전문적인 교육과 실습까지 마친 만큼 페인트를 칠해나가는 롤링베어스들의 손끝이 야무지다.
초록으로 가득했던 옥상이 야금야금 흰색으로 변해간다. 뜨거운 태양에 금세 페인트가 마르
고, 완벽한 시공을 위해 다시 한 번 페인트를 덧칠할 차례. 어느새 옷은 땀으로 흠뻑 젖고 허리
를 펴기도 쉽지 않지만, 나의 노동이 지구를 식힌다는 생각에 페인트를 칠하는 손길에 속도가
더해지더니, 어느새 새하얗게 채워진 옥상.
시작 전 28℃였던 옥상 표면의 온도가 21℃까지 내려간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뜨거운 태
양 아래서 땀 흘려 일한 롤링베어스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번진다. 쉽고 빠르게 지구를 식히
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 쿨루프가 만들어낸 시원한 마법이다.
글 박향아 사진 김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