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
태양의 도시, 에너지 보호 수도, 가장 지속가능한 도시, 글로벌 태양광 산업의 태동지. 이는 모두 한 도시를 지칭하는 수식어다. 바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인구 23만 여명의 소도시가 이처럼 세계를 선도하는 스마트시티이자 친환경 에너지 도시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데는 누구보다 빨리 태양광 에너지의 가치를 내다보고 도입에 앞장선 것이 주효했다. 그리고 이제 프라이부르크는 에너지 자립을 넘어 플러스에너지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사진 출처 FWTM-Schoenen, 위키피디아 Andrewglaser, ingenhoven architects, SAG Solarstrom,
Rolf Disch Solar Architecture, 프라이부르크 대학 도서관, FWTM Spiegelhalter
*깐부: 친한 친구, 짝꿍, 동반자를 뜻하는 은어·속어
원전으로 촉발된 태양광과의 만남
태양에너지는 풍력, 수력과 함께 인류가 가장 오랜 기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다. 친환경성은 물론 무한성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태양이 지표면에 쏟아 붓는 빛과 열에너지를 온전히 모을 수만 있다면, 1시간 만 모아도 전 인류가 1년 간 사용할 에너지 확보가 가능할 정도다.
이 같은 태양에너지와 프라이부르크의 만남은 다름 아닌 원자력발전소에 의해 성사됐다. 지난 1970년 주정부가 전력난 극복을 위해 시 외곽에 원전 건설 계획을 세우자 주민과 시민운동가들이 격렬히 반대하며 태양광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 이는 프라이부르크가 연중 일조시간 1,800시간, 1㎡당 일조량 1.117kw로 태양광 최적 입지라는 사실에 주목한 판단이었다.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1975년 주정부는 계획을 철회했고, 1979년 세계 최초의 태양전지 패널이 프라이부르크에 설치됐다. 1979년은 미국 스리마일섬에서 세계 최초의 원전사고가 발생한 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더한다.
이후 1981년 프라이부르크 시당국은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 시스템 연구소(Fraunhofer ISE)를 설립해 관련 분야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진 이듬해인 1987년 태양광 중심의 에너지 자립 도시 전환을 전격 선포했다. 오는 2035년까지 에너지 수요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해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태양의 도시, 프라이부르크
40여 년간의 지속적인 노력에 힘입어 현재 프라이부르크는 태양광 산업이 태동하고 꽃을 피운 상징적인 도시가 됐다.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프라이부르크=태양광’이라는 등식에 수긍할 만큼 도시 전체의 주택과 빌딩, 상점, 공공시설에서 태양광 패널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 패널들을 한곳에 모으면 면적이 15만㎡에 달하며, 연간 전력생산량은 1,000만kwh이상으로 약 2,9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시내에서 3㎞ 떨어진 생태마을 보봉(Vauban) 지구는 이러한 프라이부르크의 태양광 사랑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약 5,500여 명이 거주 중인 보봉지구의 모든 다세대 주택은 1㎡당 65kWh 이하의 에너지로 생활이 가능한 저에너지 건물표준을 준수한다.
이를 위해 옥상에는 태양전지가 장착돼 있으며, 고효율 조명, 단열 창호 등을 통해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필요시 인근의 바이오매스 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지만 많은 가구가 에너지 자급자족을 넘어 여유분의 전력을 전력회사에 판매하고 있다. 이처럼 일명 '플러스 에너지 하우스'는 보봉지구 외에도 프라이부르크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독일 정부는 해당 주택에 20년간 연 6,000유로의 전력판매 수익을 보장한다.
보봉지구의 성공을 발판으로 프라이부르크 시는 리젤펠트(Riesefeld) 지역에도 새로운 친환경 거주 지역을 조성했고, 현재 70㏊ 면적에 1만 2,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외에도 프라이부르크에는 태양에너지와 관련한 랜드마크가 하나둘이 아니다. 마치 해바라기처럼 햇빛의 방향에 맞춰 태양전지 패널이 회전하는 건물 ‘헬리오트롭(Heliotrop)’, 태양광으로 연간 25만kWh의 전력을 생산하는 SC프라이부르크 프로축구단의 홈구장 ‘바데노바 슈타디온’,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의 아이콘인 높이 60m의 ‘솔라타워’ 등이 대표적이다.
필(必)환경 도시의 빛나는 본보기
하지만 프라이부르크가 단순히 태양광 하나만으로 지금의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다. 생활과 주거, 교통, 도시계획 등 전반에서 태양에너지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일례로 모든 신축 건물은 최신 단열공법으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패시브하우스’ 설계만 허용된다.
특히 프라이부르크는 교통 분야의 혁신에 많은 공을 들였다. 대다수 국가가 도로 인프라 확충에 매진하던 1970년대부터 자동차 억제 정책을 도입한 것. 주요 도심에 보행자 전용거리를 만들었고, 주차료를 살인적 수준으로 높여나갔다. 또 우리나라가 올해 도입한 ‘안전속도 3050’처럼
최대 시속을 30km~50km로 제한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제도화하기도 했다.
대신 신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구동되는 트램의 노선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전체 주민의 70%가 트램 역세권에 거주하고 있으며, 무려 500㎞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를 정비해 주민들의 이동편의를 돕고 있다. 아울러 도시 외곽에 대규모 주차공간을 조성하고, 전기차 카셰어링을 활성화함으로써 외부인조차 교외에 차량을 주차한 뒤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 결과,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의 자전거 이용률은 자동차 이용률과 거의 동일한 30% 수준으로 급증했고, 대중교통 이용률도 20여 년간 2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동차로는 30분, 트램으로는 15분, 자전거로는 10분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을 정도다.
이렇듯 프라이부르크가 독일 국민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친환경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는 남들보다 50년이나 앞서 태양광의 가치를 직시하고, 시민들과의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도시 인프라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환경친화적 삶을 지향하는 높은 시민의식도 한몫했다.
전 세계 모든 도시들이 환경을 핵심 키워드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지금, 프라이부르크는 필(必)환경 도시의 빛나는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최초 플러스 에너지 공공건물 ‘뉴 타운홀’
지난 2017년 11월 완공된 프라이부르크의 시청사 ‘뉴 타운홀’은 세계 최초의 플러스 에너지 공공건물이다. 청사 운영에 필요한 전력과 냉·난방에너지보다 많은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중세시대의 원형 경기장을 본뜬 7층 건물의 외벽 전체에 탈부착이 가능한 880개의 태양광 모듈이 부착돼 있다. 또한 지열에너지로부터 냉난방에너지를 공급받고 있으며, 건물 곳곳에 최신 패시브하우스 기술도 대거 적용했다. 덕분에 뉴 타운홀의 연간 1차 에너지 소비량은 1㎡당 55kWh 이하에 불과하다. 이는 일반적인 현대식 건물과 비교해 40%에 불과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