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이야기
“세상은 모두를 무너뜨리고, 많은 이들이 그 무너진 자리에서 더욱 강해진 다”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한 소절을 몸소 실현한 이들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빛이 날 것만 같은 셀럽들에게도 역경의 시절이 있었다면?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듯, 화려한 성공과 성장 뒤에는 고난을 딛고 일어선 시간들이 있었다. 맹목적인 성공담에만 주목하기보다 그 이면에 숨 겨진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페르소나가 된 <오징어게임>의 감독 황동혁
세계는 지금 ‘오징어게임’ 신드롬에 빠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플릭스 CEO는 ‘코드콘퍼런스 2021’에서 “넷플릭스가 선보인 모든 작업물 중 ‘오징어게임’이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021년 하반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황동혁 감독이 2008년부터 구상해 2009년에 대본을 완성했지만, 낯설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제작사들로부터 여러 차례 거절당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징어게임’의 탄탄한 서사와 구성 뒤에는 황 감독의 고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드라마 제작 기간 중 치아가 6개나 빠졌을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빠진 것. 황 감독이 이렇게까지 고생한 이유는 그가 연출, 각본, 제작까지 모두 혼자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이 황동혁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황 감독의 암울했던 실패의 그림자가 비춰지기 때문이다. 극 중 캐릭터 조상우와 공통점이 꽤 있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점, 시장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점, 조상우처럼 서울대를 졸업한 이력 등이다. 특히 홀어머니 설정은 감독의 대표작들인 <도가니>, <수상한 그녀> 등 다양한 작품에서도 접할 수 있는데, 자신이 유년시절에 겪었던 아픔을 외면하기보다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이다.
아픈 손가락이라고 잘라내 버릴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자주 살피고 들여다 봐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으로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 황동혁 감독은 아팠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아프지 않게 해주는 방법으로 예술을 택한 셈이다.
숱한 비판 속에 꿋꿋이 피어난 꽃, 방탄소년단(BTS)
영국의 록밴드 ‘콜드플레이’와 방탄소년단(BTS)이 함께 발매한 ‘My Universe’가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Dynamite’, ‘Butter’, ‘Permission to dance’ 등 발매하는 족족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장식하며 K-POP의 세계화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방탄소년단. 하지만 이들의 첫 등장은 음악계에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엑소, 인피니트, 비투비, B1A4 등 아이돌 그룹이 홍수처럼 쏟아지던 2010년대 초, 정통 힙합을 콘셉트로 아이돌 시장에 첫발을 들인 방탄소년단은 기존 아이돌 그룹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던 ‘힙합’을 차별점으로 야심 차게 데뷔했다. 그러나 정체성과 진정성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힙합계와 아이돌계에서 모두 인정받지 못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신공격적 질문을 받기도 했던 이들은 혹독한 비판 속에서 ‘힙합 장르 기반의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만약 이때 콘셉트를 바꿨더라면 방탄소년단은 아이돌 시장에서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부지런히 달렸고, 오늘날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방탄소년단(BTS)’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부족해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으니 자신을 사랑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RM(랩몬스터)의 UN총회 연설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방탄소년단이 처음부터 스타덤에 오른 그룹이 아닌, 한 계단 한 계단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긴어게인! 마크러팔로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와 <비긴어게인>의 흥행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마크러팔로. 그는 어린 시절, 무명과 배고픔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앓아야 했고 오디션 결과는 번번이 낙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크러팔로는 연극 <이것이 우리의 청춘>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젊은 시절의 말론브란도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후 영화계까지 진출하며 지금까지의 고생을 보상받는 듯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뇌종양 판정을 받으며 다시 좌절하게 된다. 이후 생사를 넘나드는 대수술 끝에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배우 인생은 포기해야 하는 위기에 봉착한다. 배우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안면 마비가 찾아왔기 때문.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아내의 도움으로 결국 재활에 성공하고 다시 배우의 길을 걷는다. 안타깝게도 뇌종양 수술 과정에서 왼쪽 청력을 잃은 그. 하지만 역경을 통해 자신의 몰랐던 면을 발견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뇌종양이 전화위복의 기회였다고 말한다. 현재 마크러팔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환경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장애를 희망으로, 스티븐 호킹
“자신의 장애를 원망하게 되면 마음의 장애인이 된다”라는 말을 남긴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22세에 온몸의 운동신경이 파괴되어 전신이 뒤틀리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을 진단받는다. 그것도 1~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스티븐 호킹은 점차 걷기 힘들어지더니 넥타이나 구두끈을 맬 수 없을 정도로 근육이 굳어갔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생각만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천체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43세에는 호흡하는 것도 가슴에 꽂은 파이프에 의존해야 했고, 대화도 휠체어에 부착된 음성합성기를 통해서만 할 수 있었지만, 이 시기에 그는 '특이점 정리', '블랙홀 증발', '양자우주론' 등 현대물리학에 3개의 혁명적 이론을 제시하였고, 세계물리학계는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물리학의 계보를 잇는 위인으로 그를 꼽았다.
스티븐 호킹은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당신은 다 해낼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나를 보라”라는 말을 남겨 어려움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분윳값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조앤.K.롤링
세기의 명작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K.롤링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그녀가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가난한 상태에서 아이의 분윳값을 벌기 위해 글을 썼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또한, 조앤은 불문학을 전공해 통역 담당 비서로 취직했지만 공상에 잠기는 습관 때문에 해고당하기도 했다.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과 이혼 후 무일푼이 된 상태에서 홀로 어린 딸까지 지켜야 했던 그녀는 힘든 환경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산책하던 중 아이가 잠들면 근처 카페에 가서 틈틈이 글을 썼고, 아이가 잠든 늦은 밤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역경을 딛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원고였지만, 12곳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조앤. 결국 13번째였던 소규모 출판사에서 500부 정도만 출판하자는 제안을 수락해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해리포터> 시리즈는 머지않아 1억 부 매출을 돌파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판타지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게 되었다.
추락할 때는 딱딱한 바닥이 아프게만 느껴졌지만 결국 그 단단한 바닥 위에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는 조앤.K.롤링. 그녀가 어려움 앞에 굴복했다면 전 세계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해리포터’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둠을 밝히는 음악의 빛 스티비원더
교실에 쥐가 나타난 사건이 있었다. 아이들은 쥐를 쫓으려 했지만 쥐가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선생님은 그 교실에서 늘 따돌림받던 시각장애인 아이에게 숨은 쥐를 찾아보라고 했다. 아이는 교실 구석의 벽장에서 쥐 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덕분에 쥐를 쫓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아이를 불러 “넌 우리 반의 어떤 친구도 갖지 못한 특별한 귀를 가졌어”라고 격려해주었고, 선생님의 그 말은 의기소침하고 힘없던 아이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이 아이가 바로 R&B의 제왕 스티비원더이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인생을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격려에 힘을 얻은 스티비원더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고 11살에 첫 앨범을 발표한다. 스티비원더는 늘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찾아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스티비원더가 ‘불쌍한 장님 소년’이라는 타인의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R&B 제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우린 모두 저마다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일한 차이점은 그 능력을 사용하느냐의 여부입니다”라는 말을 남겨 자신을 믿으며 스스로 능력을 발휘할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