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를 닮은
풍경에
빠지다
- 충청북도 단양
내륙을 대표하는 여행지를 떠올릴 때 단양은 첫손에 꼽힌다. 석회암 지대에 세월이 켜켜이 쌓이며 형성된 절경이 자연의 신비를 전하고, 패러글라이딩을 비롯해 다양한 레포츠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하는 ‘한국 관광의 별’에 충청북도 최초로 선정된 만천하스카이워크를 비롯해 남한강 절벽에 조성된 강변 산책로 잔도, 고구려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전설이 스며있는 온달관광지 등 단양에 빠지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 모른다.
단양 여행의 출발점 도담상봉
사람의 손길이 아닌 세월과 자연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절경을 보면 “아~!” 하는 감탄과 함께 자연스레 여행의 속도가 느려진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줄기 한가운데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솟아오른 도담삼봉을 볼 때처럼 말이다. 도담삼봉은 단양팔경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곳으로 많은 사람이 ‘충북 단양’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만큼 세 개의 봉우리가 뽐내는 자태는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여름을 지나 일교차가 점차 커지는 시기이기에 물안개가 핀 남한강을 상상하며 부지런히 새벽길을 달린다. 잠시 후 하늘의 붉은 기운이 점차 강해지며 태양이 수줍게 모습을 보인다. 강물에 비친 일출과 도담삼봉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중앙의 가장 큰 봉우리인 남편봉이 임신한 첩봉과 마주 보고 처봉이 등을 돌린 채 떨어져 있는 모습도 재미있다.
선조들이 단양의 빼어난 풍경에 매료되어 남긴 시심(詩心)을 살짝 엿보면 이렇다.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1501~1570)은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 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라는 시를 남겼고, 추사 김정희(1786~1856)는 단양팔경 중 하나인 사인암을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 같다’라고 예찬했다.
도담삼봉이 전하는 정취를 감상한 후, 주차장을 지나 음악분수대 뒤편의 계단길로 향한다. 이 산책로 끝에 2경인 석문이 있다. 커다란 바위에 구멍 뚫린 모습이 마치 무지개를 연상시킨다. 석문을 통해 강 건너 농촌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천상에서 인간세계를 엿보는 듯 느껴진다.
만학천봉 위에 우뚝 솟다, 만천하스카이워크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단양을 가로지르는 남한강을 중심으로 산자락 곳곳에 비경을 간직한 고장. 단양군은 이렇듯 빼어난 풍경을 감상하려는 여행자를 위해 2017년에 색다른 전망대를 만들었다. 단양역 앞 강 건너 만학천봉 정상에 조성된 만천하스카이워크이다. 짜릿한 스릴을 즐길 수 있는 짚와이어와 알파인코스터까지 생겨나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 명소로 자리 잡은 곳이다.
단양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봉우리에 우뚝 솟은 만천하스카이워크에 오르면 기막힌 전망에 막힌 가슴이 탁 트인다. 남한강 수면을 기준으로 80~90m 높이의 봉우리에 높이 25m로 세워진 전망대는 오르는 길도 색다르다.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오르기에 주변 풍경이 마치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단양 읍내에서 만천하스카이워크로 가려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천추터널을 지나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철길을 도로로 전환한 길이다. 그렇기에 신호등 표시에 맞춰 번갈아 지나야 한다. 만천하스카이워크는 단양 여행의 떠오르는 핫 스폿이기에 주말이면 1시간 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다.
만천하스카이워크에 올랐다면, 내려올 때는 짚와이어나 알파인코스터를 이용해 보자. 짚와이어는 산허리의 중간 환승장까지 680m, 환승장에서 주차장 옆 도착장까지 300m로 두 번에 걸쳐 내려온다. 전망대에서 본 풍경에 스릴까지 느끼며 내려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노레일 형태의 알파인코스터는 탑승자가 스피드를 조절하며 내려오기에 조금 더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만천하스카이워크 주차장에서 연결되는 단양강 잔도 역시 여정에서 빼놓으면 아쉬운 코스이다. 단양에서는 남한강을 단양강으로 부르는데 강을 따라 병풍처럼 이어진 절벽에 데크로 산책로를 매단 것이 바로 잔도이다. 중국 장가계 천문산 기암절벽의 유명한 명소로 꼽히는 유리잔도를 연상케 한다. 약 1.12km로 구간이 길지 않고 계단 없이 평탄하여 유모차를 이용한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제격이다.
단양 레포츠의 백미, 패러글라이딩
단양군 일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독 눈길을 끄는 게 있다. 햇살에 비친 모습이 옥구슬을 뿌려놓은 듯 반짝반짝 빛나는 남한강의 물결, 소백산과 월악산에 둘러싸인 굽이굽이 아름다운 길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을 유유자적 떠다니며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패러글라이딩 무리가 그것이다. 굽이굽이 이어진 소백산 자락과 남한강의 수려한 풍경에 둘러싸인 단양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감상하는 쾌감은 그 어떤 언어로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단양의 패러글라이딩 포인트는 양방산활공장과 두산활공장 두 곳이다. 남한강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양방산활공장은 단양 시가지, 두산활공장은 산과 들을 감상하며 비행한다. 이중 두산활공장에는 활공장 시설로 사용하던 건물을 이색적인 카페로 리모델링한 ‘카페산’이 있어 연인들이 데이트 코스로 자주 찾는다.
굳이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하지 않더라도 활공장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단양 풍경만으로도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일단 정상에 오르면 소백산과 남한강이 자아내는 풍경에 압도되기에 그렇다.
온달 장군과 평강공주의 이야기 속으로, 온달관광지
단양은 특히 6세기경 한강 유역의 패권을 두고 고구려와 신라가 수없이 많은 전투를 벌인 격전지이자 왕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을 뛰어넘어 극적인 사랑을 이룬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이를 위해 조성된 공간이 바로 드라마 세트장을 겸한 온달관광지이다. 이곳에서 <태왕사신기> <육룡이나르샤> <화랑> <천추태후> <바람의 나라> 등 이름만 들어도 솔깃한 유명 사극이 촬영되었다.
‘온달’이라는 이름을 달고 드라마 세트장을 겸한 대규모 관광지가 이곳에 조성된 이유는 온달산성 때문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 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죽령 이북의 땅을 회복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아단성 아래에서 화살을 맞아 전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아단성이 바로 현재의 온달산성으로 추정된다. 단양군은 이러한 역사성을 부각하기 위해 온달과 평강공주라는 캐릭터를 활용해 지역을 알리고 있다.
온달관광지에 도착하면 온달산성부터 오르기를 추천한다. 온달관광지에서 세트장과 전시장, 온달동굴까지 두루 살피다 보면 정작 단양 여행의 백미로 손꼽히는 온달산성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변을 따라 단양 읍내에서 영춘면으로 향하는 길은 강가의 기암괴석이 여행자의 시선을 압도하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이다. 산성에 올라 지나온 풍광을 내려다보면 수려한 진면목을 접했음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글/사진 김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