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난 : 명사에게 묻다

21세기 풍속화에
그저 놀랄 수밖에
한국화가 김현정

Text. 박영화 Photo. 정우철 Video. 최의인

여기, 한복을 입은 한 여인이 있다. 다소곳하게 앉아 단아함을 뽐낼 것 같지만, 그녀는 놀랍게도 반쯤 먹은 짜장면을 들고 있거나 참지 못하고 결국 냉장고에서 피자를 꺼내 먹는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국화가 김현정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의 작품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저고리는 염색한 한지를 붙여 한복의 서걱거리는 질감을 표현하고, 치마는 먹을 이용해 반투명하게 그려 몸의 라인이 비치게 하는 등 표현법도 독특하다. 그녀의 작품에 반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극찬을 쏟아내고 있다. 201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인 최연소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최연소 작가로 초청, 한국화가로서는 처음으로 <포브스>에서 선정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동아일보>에서 선정하는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선정되는 등 매년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는 한국화가 김현정. 마치 그림 속 여인이 나오기라도 한 듯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김현정 작가와 마주앉았다.

Q

2013년 데뷔 전시인 <내숭이야기> 등 내숭시리즈가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어떤 계기로 그리게 된 건가요?

A

제 그림에는 저처럼 한복을 입은 여인이 등장해요. 때로는 라면을 먹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쇼핑도 하는 일상생활이 담겨있는 그림입니다. 그러다 보니 ‘21세기의 풍속화 같다’는 별명도 붙었어요. ‘내숭시리즈’로 불리는 이 그림들은 제가 마음이 되게 아팠을 때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아픈 마음이 나아질까’라고 고민을 하다가 ‘그림이랑 대화를 해봐야겠다’, ‘내 생활을, 내 이야기를 그림 속에 풀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깐 내숭시리즈는 제 그림일기장이기도 하고,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Q

평소 어떻게 작업을 하시는지 소개해주세요.

A

<내숭이야기>는 동양의 수묵과 담채, 서양의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동서양의 컬래버레이션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동양화의 전통적인 미를 살리면서도 현대화된 서양의 콜라주 기법을 조화롭게 이뤄 작업했습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욕심을 부리는 편인데 한지 콜라주로 한복 저고리 특유의 서걱거리는 질감을 입체적으로 살리고자 하였고, 수묵과 담채로 그린 한복 치마는 속이 비치는 누드를 효과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내숭에 대한 관객의 통찰을 기대했습니다.

Q

많은 작품 중 어떤 작품에 가장 애착이 가나요?

A

가장 어려운 질문인데요. 보통 하나의 작업을 하는데 6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에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갈 수밖에 없어요. 마치 아이에게 태명을 지어주는 것처럼 작품에도 태명을 지어줄 정도이지요. 그래서 어느 한 작품을 손꼽기는 어렵지만, 초기에 그렸던 작품들과 제작시간이 오래 걸린 작품들에 조금 더 애착이 갑니다. <아차_라면>은 <내숭이야기>를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었고, 맥 딜리버리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내숭 : 나를 움직이는 당신>은 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이었습니다. 최근에 그린 <결혼 : 아침을 여는 샘>도 애착 가는 작품이에요. 풍요로운 생명력을 뜻하는 샘을 아침의 에너지가 되는 시리얼과 우유로 표현했습니다.

저의 작품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양한 작품 중, 유독 <내숭이야기>를 좋아해 주시는데요. 여러 시선과 통념으로부터 일탈하는 저의 고백적 자화상을 담았어요.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에서 금상 수상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가져다준 작품이라 저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Q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인 최연소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최연소 작가로 초청 등 놀라운 기록을 많이 갖고 계신데요. 좋은 평가에 대한 작가님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A

제가 활동한 지 벌써 10년 정도 됐는데요, 정말 감사하게도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면 교과서 9종에 제 그림이 실렸고, <포브스>에서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뽑혔어요. <동아일보>가 선정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도 포함되었고요. 이렇게 좋은 평가를 해주실 때마다 되게 얼떨떨해요.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곤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을 냅니다.

Q

팬들과 SNS를 통해 자주 소통하시는데, 그 시간이 작가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A

제 MBTI가 ENTJ입니다. 외향적이죠. 일반적으로 화가들은 골방에 앉아서 그림만 그릴 것 같은 이미지잖아요. 그래서 ‘그 외로운 직업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SNS에 그림을 올렸는데, 댓글이 쉴 새 없이 달리는 걸 보면서 외로움이 사라지더라고요. ‘21세기가, SNS가 나를 도와주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SNS에서 소셜드로잉이라는 것을 하고 있어요. 온라인에서 집단지성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화가는 혼자서만 그림을 그릴 것 같지만 조선 시대에는 10명의 화공이 동시에 어진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예술은 협업의 집합체라고 생각합니다.

Q

인터뷰나 전시회 등에서 한복 입은 모습을 자주 봅니다. 특별히 한복을 입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A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가로서 또 다른 꿈은 한국의 문화 전도사입니다. 세계에 알리고 싶은 한국의 문화가 많은데요. 특히 한복이라는 아이템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제 그림의 모든 등장인물은 한복을 입고 있는데, 잘 그리기 위해 자주 들여다보고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복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전시를 보러 오신 분께서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림에 그려진 한복 치마가 둘러져 있는 방향이 기생을 의미한다. 기생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그린 것인지’를 물어보셨습니다. 그때, 머리를 쾅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한복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최대한 한복을 입으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Q

주변에서 작가님을 ‘한국화의 아이돌’이라고 표현하는데요. 팬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또 불리고 싶으신가요?

A

한국화의 아이돌, 21세기 풍속화가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러주시는데요,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한국화의 아이돌’입니다.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가수처럼 팬덤문화를 형성했다는 점 때문에 그런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 같아요. 예쁘게 봐주시는 만큼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굳건히 하게 됩니다. 저는 제 활동의 목표가 누구나 일상에서 미술을 즐기는 세상이 되도록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저의 작업은 친밀하고 쉬워야 합니다. 제가 요즘 시대의 유행이나 일상을 쉽게 표현하기 때문에 많은 분이 제 그림을 보면 쉽게 기억하고, 또 편하게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비록 제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 아이돌이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화가’라는 의미라면, 앞으로도 계속 ‘한국화의 아이돌’로 불리고 싶습니다.

Q

<따뜻:한난> 독자들에게 인사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A

더 많은 기회를 갖고 만날 수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그러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어요. 전시도 많이 못하고 강의나 강연으로도 많이 못 뵀고요. 그래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게 나름의 어떤 자구책을 세워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요. 한국지역난방공사에 대한 관심과 응원처럼 저에게도, 또 많은 예술가에게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저도 한국지역난방공사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따뜻한 에너지 많이 받으세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화가’라는 의미라면, 앞으로도 계속 ‘한국화의 아이돌’로 불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