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우리 : 듣는 서점

계절 산문

안전처 재난안전부 이재승 주임

Text. 편집실 Voice. 이재승 주임 Photo. 배가람

무더위를 견뎌야하는 계절, 여름. 여름의 절정을 지나고 있어서인지, <계절 산문>이라는 책의 제목이 끌렸습니다. ‘이 책은 과연 어떤 계절을 이야기할까?, 어떤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이내 한 장, 한 장, 박준 시인이 말하는 계절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 듣는 서점은 한난 직원이 직접 책을 읽어주는 코너입니다.
아래 오디오 재생버튼을 클릭하시면 이재승 주임이 읽어주는 <계절 산문>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저녁과 저녁밥

이른 휴가, 제가 머문 곳은 오래된 한옥이었습니다. 안채에는 주인 내외가 계시고 저는 조금 떨어진 별채에 머물렀습니다. (중간 생략)

혼자 온 제가 마음이 쓰였는지 주인집 어른들은 삶은 감자 같은 간식들을 종종 방 앞에 두고 가셨습니다. 그러고는 앞으로 안채에서 저녁밥을 함께 먹자고도 하셨습니다. 저녁마다 저는 과일이며 맥주 같은 것을 사 들고 안채로 가서 손님보다는 손주처럼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낮 동안 몇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좋지 않은 소식들. 괴로운 마음에 그날 저는 유난히 먼 산책길을 돌아야 했습니다.

발을 길게 끌며 민박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 할머니는 “뭐한다고 땡볕에 종일 걷기만 한대, 어서 씻고 저녁 먹어”라고 말하셨고 저는 머뭇거리며 저녁 생각이 없다고 답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인 할머니는 “저녁은 저녁밥 먹으라고 있는 거야”라고 다시 말하셨고요.

별것 아닌 할머니의 이 말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녁은 저녁밥 먹으라고 있는 것이지, 너처럼 후회하고 괴로워하라고 있는 게 아니야’라는 말로도 바뀌어 들렸으니까요. 또 저녁입니다.

조언의 결

살아오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종종 들었습니다. 내 마음 안쪽으로 돌처럼 마구 굴러오던 말들, 저는 이 돌에 자주 발이 걸렸습니다. 넘어지는 날도 많았습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상대가 나를 걱정하고 생각해주는 사람인지, 그래서 해온 조언인지. 아니면 나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면박을 주기 위해 하는 말인지.

앞의 경우라면 상대의 말을 한번쯤 생각해보고 또 과한 표현이 있다면 솔직하게 서운함을 이야기해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뒤의 경우라면 그 말은 너무 귀담아듣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자격은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가질 수 있으니까요. 빛과 비와 바람만이 풀잎이나 꽃잎을 마르게 하거나 상처를 낼 수 있지요. 빛과 비와 바람만이 한 그루의 나무를 자라게 하는 것이니까.

BOOK COMMENT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마지막에는 박준 시인이 자필로 “잘 가라는 배웅처럼, 한결같이 손을 흔드는 기억들. 하지만 얼마쯤 지나 돌아보면 다시 오라는 손짓처럼 보일 것입니다. 새 계절을 지나며”라고 적어두었는데요. 이 문장까지 읽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을 펼치기 전에는 이 뜨거운 계절을 견뎌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이 여름이 다시 그리워질 것 같네요. 그립지 않도록, 여러분도 지금 이 계절을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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