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관련 저명인사 만남 지금, 행복한가요?
노래하는 의사 김창기

김창기 원장은 본인의 저서 <노래가 필요한 날>을 통해 ‘낮에는 정신건강을 돌보는 의사로 밤에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냉철함과 애틋함을 오가며 사는 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혜화동’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널 사랑하겠어’ 등 따뜻한 노랫말과 멜로디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뮤지션이자 누군가의 마음을 치료하는 ‘생각과마음의원’ 원장으로 살아가는 노래하는 의사, 김창기. 그와 함께 ‘행복’을 이야기해보았다.

글. 박향아 사진. 김정호 영상. 천정민

Q.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한난) 독자분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노래하는 의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김창기입니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 한국지역난방공사 임직원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다들,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죠?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가요? 근황을 알려주세요. A. 병원에서는 열심히 환자를 돌보고, 집에서는 좋은 남편, 아빠가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병원 지하 밴드실에서 종종 공연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공연은 못 하고 있고요. 참, 제가 그 유명한 ‘고3 아빠’입니다. 맛있는 거 많이 사주고, 사랑한다는 얘기도 많이 하려고 해요. 딸의 반응이요? 사랑한다고 하면 딱 한 마디 하죠. “알아.” 그래도 대답을 해주는 게 어딥니까.(웃음) 작년에는 <노래가 필요한 날(나를 다독이는 음악 심리학)>이라는 책을 냈는데 속된 말로, 망했습니다.(웃음) 그래도 그 책 덕분에 여기저기 방송에서 불러주기도 하고,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YTN 라디오 ‘마음주치의’라는 프로그램 시즌 1을 마치고 10월부터 시작하는 시즌 2를 준비 중입니다.

Q. 큰 사랑을 받았던 포크 밴드 ‘동물원’의 멤버였기에 만나서 반갑고 영광입니다. 당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동물원’은 제게 달콤 쌉싸름한 기억입니다. 대학 때 만나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면서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했었죠. 그 친구들이랑 ‘동물원’이란 그룹을 만들어서 공연도 하고 ‘오빠’ 소리도 들어보고… 그 시절 우리의 음악이 많이 잊혔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들이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하고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우리 노래 ‘혜화동’이 OST로 삽입되면서 밴드 이름이 다시 알려지기도 했죠. 우리들의 젊은 시절이 담긴 노래가 다시 기억되고 불리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네요. 물론 ‘동물원’으로 활발히 활동할 때도, 우리 노래가 다시 불리는 지금도 감사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동물원’ 1집을 녹음했던 때예요.
대학생 때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 노래를 들은 김창완 씨가 “만든 노래 다 가지고 와 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 노래와 친구들이 만든 노래를 모아서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서 갔어요. 그랬더니 음반을 만들자고 하시는 거예요. 단번에 신이 나서 일주일에 한 곡씩 녹음했어요. 좁은 녹음실에서 시시덕거리며 장난치다가도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하고,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막상 음반이 나오고 공연을 하면서부터는 오히려 재미를 잃어버렸달까요. 인기를 잃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온전히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만들던 노래가 대중을 위한 노래로 변해가는 것도 보고,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싸우기도 했었죠. ‘동물원’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 저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Q. ‘동물원’ 활동을 마무리한 후에도 꾸준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데요.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 대중을 행복하게 만든 노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제게는 다 부족한 노래들인데 많은 분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그중 하나를 꼽자면 양희은 씨에게 드렸던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를 꼽고 싶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그렇기에 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엄마와 딸의 진심이 담긴 노래인 데다 양희은 씨의 목소리가 더해져 많은 분께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노래는 제 아들을 보면서 만든 노래랍니다. 원래대로라면 ‘아빠가 아들에게’라는 노래로 발표가 됐을 거고, 그랬다면 이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했을 것 같아요.(웃음)

Q. 좋은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인 동시에 의사이기도 한데요. 어떤 계기로 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는데 가창력이 떨어져서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그래서 만드는 걸 좋아하니 건축가가 되어보자 했는데, 어머니가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또 효자예요. 그래서 의대에 진학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저랑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의사 같지 않은 의사, 정신과 의사를 선택했죠.(웃음)
하지만 참 어려운 분야에요. 배워야 할 것도 많은데, 이걸 배우고 나면 또 새로운 배움이 이어지거든요. 전문의가 되어도 눈 감고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 같아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많은 분야인 만큼 꾸준히 공부해야 하죠. 그런데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를 해도 치료 효과가 크지 않아요. 그게 늘 고민이에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구하고 고민하게 되고요.


Q. 그래도 정신과 의사라서 행복한 순간,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으시죠? A. 단순해요. 환자가 잘 치료되었을 때. 그래서 변화하고 성숙해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끼죠. 특히 저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로서 어린 환자들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함께 가야 해요. 그 과정에서 희로애락을 모두 겪게 되죠. 느리지만 조금씩 관계가 깊어지고 신뢰가 쌓이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정신과 의사가 되길 잘했다’고 느끼곤 합니다.

Q. 현재 ‘김창기와 좋은 친구들’로 계속해서 밴드 생활을 하고 이어가고 있는데,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A. 음악을 좋아하니까요.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늘 있어요. 처음 의사가 되었을 때만 해도 정신과 의사는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환자의 거울이 되고 백지가 되어야 한다고. 그래서 음악을 멈췄어요. 그런데 나중에 연구 결과를 보니까 오히려 능동적이고 따뜻한 의사, 자신을 보여주고 반응을 잘하는 의사가 환자에게 신뢰를 주고 더 효과적인 치료를 한다는 거예요. 이제는 숨을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죠. 막상 음악을 다시 시작하려니, ‘다시 해도 될까,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딸이 “그냥 한 번 해봐”라고 해서 음반을 냈어요. 그 후로 꾸준히 노래를 만들고 발표하는데 반응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노래를 만드는 즐거움이 커서 계속하고 있어요.


Q. 의학과 음악, 굉장히 다른 두 갈래의 길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어떤 것이 더 본인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요? A. 우선 ‘행복이 무엇이냐’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내 존재에 대해 안정감을 느끼고, 내가 발전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면, 당연히 저를 행복하게 하는 건 의학이죠. 반면 순간의 만족감을 주는 것은 음악이에요.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할 때의 쾌감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찰나의 만족감은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내가 잘살고 있다고 느끼는 일상의 상태가 행복이거든요. 정신과적으로 봤을 때도 안정적인 기본을 유지하면서 발전할 때, 주변 사람들과 연대감을 느낄 때, 내가 하는 기능이 타인에게 잘 받아들여지고 존중될 때,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의학도 음악도 아니에요. 부모님, 아내, 아들과 딸, 친구들, 개와 고양이가 저의 행복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은 우리 아이들이에요. 내리사랑이라고 하잖아요. “고생한다 둘째야”하는 부모님의 말씀, “건강 잘 챙기라”는 아내의 말 안에 사랑이 담긴 걸 잘 아는데, 그게 저를 아주 기쁘고 행복하게 하지는 않거든요.(웃음) 그런데 사랑한다는 말에 아들이 무뚝뚝하게 “알았어”라고 대답하고, 딸이 “그만해”라고 하면 그게 너무 좋아요. 아들이 씩 웃어줄 때, 딸이 어깨 툭툭 두드려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죠.

Q.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에너지 복지 요금 지원 등을 통해 지역과 상생하며 지역주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습니다. 한난 직원들이 더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행복을 나눌 수 있도록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 이미 행복을 나누는 의미 있는 일을 훌륭하게 해내고 계시네요. 참 잘하고 계십니다. 애착 이론에 의하면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면 네 가지 조건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 좋은 자녀, 좋은 동료,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함’입니다. 여러분이 생산하는 지역난방열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해요. ‘일관성’도 중요하죠. 내 감정을 잘 조절해서 언제나 일관적인 태도로 상대를 대할 때 안정적인 관계가 유지됩니다. 세 번째는 ‘민감성’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관계 개선 능력’인데요. 우리는 무수히 많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데 때로는 선의와 진심이 오해받기도 하죠. 본의 아닌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요. 이때 필요한 것이 남을 위하는 이타심, 내 욕심을 참는 억제, 내 욕심을 봉사로 승화시키는 자세, 나를 낮추면서 상대를 높여주는 유머라는 성숙한 방어기전이에요. 이 네 가지를 사용해서 성숙하게 갈등을 풀어주는 사람이 성숙한 어른이 될 때, 스스로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나눔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