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세계
우리는 무수히 많은 관계 속에 존재한다. 가족, 연인, 친구라는 밀접한 관계부터 작고 큰 규모의 기업이나 기관들도 서로 끈끈한 관계를 맺으려 애쓴다.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수많은 관계와 소속감을 통해 자신의 행복과 자아를 성취하려 애쓴다.
사회 안에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의 이모저모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만 사회적인 동물은 아니다. 사실 동물행동학자들이 꼽은 가장 사회적인 동물은 벌, 개미 등의 벌목 곤충들이다. 이를 ‘진(眞)사회성’ 곤충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장류는 매우 사회적인 동물들이다. 영장류가 다른 동물들보다 몸집에 비해 뇌의 크기가 크고 특히 의식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 신피질 부위가 발달한 건 영장류의 크고 복잡한 사회적 관계망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인간 진화와 인간 행동에 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특별한 ‘친사회성’과 ‘협동성’이야말로 “인간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물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손꼽는다. 현대 사회에서 혈연관계가 없는 개인들이 함께 대규모 집단을 이루어 협력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분명 특별한 존재다. 진사회성 곤충들의 사회성은 특별히 같은 유전적 근연도 즉, 1개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높은 자매간의 이타주의에 그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회적 동물은 비혈연 개체들과 함께 집단을 이룰 수는 있어도, 이타적 행동이나 협동의 대상은 대부분 유전자가 공유된 혈연관계로 한정된다. 하지만 인간은 공감과 상호 이해 능력을 바탕으로 혈연관계를 뛰어넘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다른 사람들과 호의를 주고받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할 수 있다.
호의와 베품에 기쁜 동물, 인간
하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돼지저금통 뚜껑을 열려고 끙끙대고 있었다. 요즘 돼지저금통은 입출금 통장처럼 꺼내 쓸 수 있게 되어있다. 그래도 나름 전통을 고려해 일부러 쉽게 열리지 않게 만든 것인지, 불량품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안 열리는 저금통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기에 왜 돈이 필요한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친구가 어제 용돈을 가져와서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주었다고, 오늘은 자기가 꼭 친구에게 맛있는 과자를 사주고 싶단다. 친구가 ‘다음에는 네가 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아이가 먼저 ‘내일 내가 살 테니 오늘은 네가 좀 사라’고 한 것도 아니지만 아이는 친구에게 호의를 받았으니 자기도 호의를 갚아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친사회성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아이 마음 속에 호혜주의 정신이 빛나고 있는 이 순간을 고장난 돼지저금통 때문에 망칠 순 없다. 그럼 용돈을 줄 테니 오늘은 네가 간식을 사라며 아이에게 오천 원을 쥐어서 보냈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친구랑 과자는 맛있게 먹었어?” 물었더니, 아이가 말하길 엄마가 용돈을 너무 조금 준 것 같단다. 친구가 오늘 용돈을 만 원이나 가져와서 계산할 때 자기보다 친구가 더 많이 냈다고 입을 삐죽인다. 편의점에서 만오천 원어치 간식을 한 번에 사 먹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어린 아이들조차 호의를 베푸는 데 얼마나 기쁨을 느끼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 친구는 분명 어제 자기 용돈으로 과자 한 봉지를 사고 느꼈던 뿌듯함이 너무 좋았기에, 오늘은 용돈을 더 많이 가져와서 베풀고자 했을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데 기쁨을 느낀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이 돈을 자신를 위해 사용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 쓸지 선택하도록 했다. 그리고 참여자들에게 돈을 사용하고 난 뒤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자기 자신을 위해 쓴 사람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쓴 사람들의 기분이 더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FMRI 자기공명영상으로 뇌를 스캔해서 너그러운 행동을 할 때 뇌 속의 도파민과 관련된 신경쾌락중추가 활발하게 반응하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지금 당장 옆자리의 동료나 부모님을 위해 작은 선물을 사보자. 틀림없이 같은 돈으로 내가 쓸 무언가를 살 때보다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보다 관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작은 규모의 전통적 수렵채집 사회에서든, 산업화한 대도시에서든 전 세계 어디에서 실험하거나 조사해도 사람들은 분명 이기적이기보다는 관대한 경향이 있다. 많은 인류학자들과 심리학자,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이 매우 협력적이며 심지어 이타적으로 편향되어 있음에 동의한다. 그리고 이런 관대한 자질은 매우 오래전 선조들에게서부터 전해 내려왔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생존과 번식에 성공한 개체만이 존속할 수 있는 자연선택의 힘 앞에서 어떻게 인간이 관대하게 행동하는 쪽으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친사회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관대한 성향이 ‘합리적인’ 또는 ‘이기적인’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많은 인류학자들은 빙하기와 같은 변화무쌍한 기후 변화 속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미닌 등과 같은 종이 모두 멸종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관대한 행동을 통해 서로 의지할 수 있었던 관계에서 찾는다. 서로 알고 지내는 작은 친족 집단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군가와 ‘단 한 번만’ 만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 아는 사람들과 계속 반복해서 만난다. 이러한 관계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대한 성향은 나중에 상대방에게 보답받거나 집단 내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상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결국 이런 사람들이 더 잘 생존하고
번식했을 것이다.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인류학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평판이 나쁜 사람은 집단에서 추방되거나 심지어 살해되기도 했다니, 선조들의 삶에서 실제로 평판은 죽느냐 사느냐를 가르는 문제였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평판은 협력할 만한 사람인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내가 호의를 베풀면 호의를 갚을 사람인지 등과 관련된 내용이다. 오늘날 평판이 나쁘다고 육체적으로 위협당하는 일은 없겠지만, 여전히 인간에게 평판은 ‘전 세계 공용 통화’나 다름없다.
인간만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가치
인간이 언어를 이용하면서 평판의 중요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언어의 진화가 다른 사람에 대한 뒷담화, 즉 가십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가설도 있다. 사람들이 커피숍에서 만나 하는 이야기의 절반 이상이 제3자의 나쁜, 또는 좋은 행실에 관한 이야기다. 언어 덕분에 나의 행동은 상대방이나 그 자리에 같이 있던 관찰자들을 넘어서 순식간에 집단 전체에 알려지고 나의 평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의 평판은 항상 알려지고, 사기꾼은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된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하드자 수렵채집민 집단에서는 노획물을 잘 배분하는 사냥꾼이 공동체 내에서 협동 파트너로 선호되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마르투 부족의 사냥꾼들은 협력적 평판에 따라 사냥 네트워크의 중심에 속한다. 미국 대학생들도 심리학 실험실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할 때 더 이타적, 협력적으로 행동한 사람과 다음 협력 게임에서 파트너가 되길 원한다. 호혜적인 관계와 평판의 중요성은 비단 개인들 간의 관계나 소규모 전통 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급속하게 성장한 비대면 온라인 상거래에서 기업 또는 판매자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온라인상의 평판, 즉 이전 소비자들이 평가한 별점에 달려있다. 비대면으로 상품을 보고, 냄새 맡고, 맛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기업이나 판매자의 평판만이 소비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기준이다. 좋은 평판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
기업 역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인 평판을 갖는다. 관대하고 호혜적인 동반성장과 상생의 가치는 언제나 이기적인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적자생존의 자연선택에서 인류는 자기 잇속만 차리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더 큰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관대하고 협력적인 존재가 되어 살아남았다. 마찬가지로 냉혹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관대하고 협력적인 기업이란 평판을 가진 기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