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난 : 생각한 난

열정! 열정! 열정!

아무도
나의 뜨거운 열정
막을 순 없다!

Text. 편집실

연말이 되면 괜스레 기분이 싱숭생숭해집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괜히 쉬고 싶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아마 한 해가 저물고, 새해에 목표로 했던 것을 다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섞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도 너무 아쉬움만 가득한 연말을 보내지 않길 바라봅니다. 지난 한 해, 분명 나는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올랐던 순간이 있었을 거예요. 혹 없더라도, 지난날 열정이 불타올랐던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한 해, 기분 좋게 마무리하세요! <따뜻:한난> 독자들처럼요.

학창시절의 패기 변치 않기를!
독자 김동석 님

1970년대는 여러모로 어려운 시절이라 별다른 취미를 갖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취미를 갖고 싶었어요. ‘가장 희소성 있는 취미가 뭘까?’ 고민했죠. 고민하다가 외국 화폐를 모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방법이 없더라고요. 서울에 있는 외국 대사관을 통해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컴퓨터가 없었던 시절이라, 대사관 번호를 알 수 없었어요. 시내 전화국의 전화번호부에서 어렵게 대사관 번호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또 난관에 부딪혔어요. 편지를 쓰려니 빈약한 영어 실력으로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더군요.

대학생 형의 도움을 받아 힘들게 편지를 완성했습니다. 몇몇 대사관에 편지를 부치고 반신반의하며 기다렸어요. 보름쯤 지나 덴마크 대사관에서 보내온 동전 하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해 모은 화폐가 지금은 150여 개국에 이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함으로 즐겼던 취미 생활인데요. 학창 시절의 열정과 패기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열정, 앞으로도 변치 않았으면 해요.

열정 넘쳤던 그때를 생각하며
독자 박현 님

십여 년 전 아들이 육사 실기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온 아들이 공원에서 오래달리기와 멀리뛰기 연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지친 아들에게 본보기가 되려고 “엄마가 먼저 1500m를 달릴 테니 네가 초시계를 들고 재봐”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고등학교 때 체력 검증 후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었어요. ‘나는 엄마다’라는 생각으로 기를 쓰고 달렸지만, 합격선 안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이참에 아들과 함께 달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아들 한 바퀴, 저 한 바퀴 보름 가까이 뛰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달렸을 때는 결국 합격선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실력이 되더라고요. 그때 아들에게 “엄마도 육사에서 받아만 준다면 갈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농담을 했던 게 기억나네요. 아들은 육군 소령이 되었고, 지금의 저는 500m도 힘겹지만요.^^; 힘도, 꿈도, 열정도 넘쳤던 그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다시 일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독자 권선영 님

결혼 후 아이를 키우느라 집에만 있었어요. 아이가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고 나니 다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끓어올랐습니다. 그때 생각난 게 자격증 시험이었어요. 고3 이후 처음으로 잠을 설쳐가며 직업상담사 자격증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2차 시험까지 합격한 후 직장을 구했고, 열심히 배워가며 일하는 중입니다. 사회인으로 회사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고 싶어 열정을 불태웠네요.^^

이웃을 보며 샘솟는 열정!
독자 김종훈 님

대학시절 친한 친구의 꼬드김(?)으로 봉사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독거 어르신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어요. 다짐은 창대했지만, 점점 ‘리포트니 시험이니 바쁜데 봉사활동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주말에 다들 야유회도 가고, 데이트도 하는데 ‘이거 괜히 시작한 거 아닌가?’, ‘그만한다고 할까?’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죠. 초심이 점점 희석되어가던 찰나, 작은 연탄난로에 옹기종기 모여서 추위를 달래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마음을 잡았습니다.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추스르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봉사활동에 임했죠. 덕분에 지금껏 잊고 살아왔던 소외된 우리의 이웃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엄동설한에 어르신들에게 온정이 전달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고, 열정을 쏟았던 그때의 경험은 잊을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