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김주희
일상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평범한 물건에는 사소하고도 놀라운 사연이 깃들어 있다. 예컨대 쉽게 뗐다 붙일 수 있는 메모지인 포스트 잇의 경우, 접착력이 약해 실패한 결과물로 남았던 접착제를 종이에 적용하면서 획기적인 문구 용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조명한다.
지금이라야 휴대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는 것이 익숙해졌다지만 누구에게나 과거 연필과 지우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 잘못 쓴 글씨를 연필 뒤에 달린 지우개로 슥슥 지워본 기억이 있을
터. 지우개와 연필이 결합된 1+1 형식의 이 연필은 1860년대 미국의 가난한 화가 지망생 하이만 리프먼에 의해 탄생했다.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던 그는 건망증이 심해 자주
지우개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탓에 여러 개의 지우개를 사지 못했고, 고심 끝에 연필에 실로 지우개를 매달아 사용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문득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이 비친 거울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얇은 양철 조각을 잘라 지우개를 연필 끝에 부착해 지우개 달린 연필을 탄생시켰다. 친구의 도움으로 지우개 달린 연필의 특허를
등록했고, 이 연필은 시판되자마자 히트 상품으로 등극했다. 유럽에서는 특허 등록이 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고, 그의 발명품을 사들인 연필회사는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다.
크기는 매우 작지만 없으면 불편한 물건들이 있다. 클립, 압정, 옷핀은 약방의 감초 같은 요긴한 존재로 자리한다. 클립의 탄생 스토리는 18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새무얼 페이는 옷감에 상표를 붙이기 위해 하나의 철사를 엇갈리게 구부려 특허 등록을 받았다. 클립의 디자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화되었고, 훗날 영국의 회사 잼 매뉴팩처링이 지금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원리의 클립을 선보였다. 타원형이 이중으로 겹쳐진 이 클립이 바로 그것이다. 압정은 1900년대 초반 독일의 시계 제작자인 요한 키르스텐이 고안했다. 작업 중
메모를 벽에 붙일 때 엄지손가락이 아프자 작은 황동 조각을 두드려서 머리를 만들고 핀을 박아 붙여 압정을 만들었다. 옷핀은 로맨티스트 남성에 의해 탄생했다. 1840년 영국의 월터
헌트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애인의 아버지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지 못했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가진 손재주를 이용해 살을 찌르지 않는 안전한 핀을 만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바늘 핀으로 리본을 옷에 꽂았는데 찔릴 위험이 컸던 터.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철사와 펜치를 사용해 옷핀을 만들었다. 그는 특허 출원을 마치고 리본 가게에
특허를 팔아 해피 엔딩을 맞았다.
때로는 ‘결핍’이 또 다른 ‘존재’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굉장히 무더웠던 1904년 어느 여름날,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 세계박람회장에는 50여 개의 아이스크림 판매대와
수많은 와플 가게가 영업 중이었다. 그 사이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던 찰스 멘체스는 일찍부터 컵과 접시가 동이 나는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남은 시간 동안 장사를 하기 위해
뾰족한 수를 떠올리던 그는 주변 와플 가게로 향했다. 와플을 원추형으로 둥글게 말아 아이스크림을 담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때 시리아 제빵 업자 어니스트 함위 또한 와플에
아이스크림을 올려 팔았다. 당시 같은 공간에 있던 상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와플에 아이스크림을 담기 시작했고, 저마다 아이스크림콘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임시방편으로 떠올린 아이디어는 오늘날 아이스크림을 더욱 편하고 풍성하게 즐기는 일상이 되었다. 결국 박람회는 아이스크림콘이 탄생한 결정적인 역사로 남았고,
‘풍요의 뿔이 솟은 세계 박람회’라는 별칭과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커피 좀 마실 줄 안다는 이들은 핸드드립의 매력을 잘 알고 있다. 맛과 풍미를 내 취향과 개성에 맞춰 조절할 수 있고, 물의 양과 온도, 물줄기의 굵기, 뜸 들이기 등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오묘한 매력을 지녔다. 지금 우리가 가정에서도 핸드드립 커피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된 데에는 독일의 작은 마을에 살던 가정주부 멜리타 벤츠의 역할이 컸다.
매번 커피를 내릴 때마다 융 소재의 헝겊을 사용했는데, 보관과 세척에 불편함을 느끼던 어느 날,
그녀는 아들의 공책 한 장을 뜯어 이를 활용해 커피를 내려 보았다. 의외로 커피 맛이 깔끔하고 뒷정리도 간편했다. 종이 커피필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에 아이디어를 더해 개발에
매진한 결과 1908년 일회용 종이 필터를 사용하는 페이퍼 드립을 발명했다. 구멍이 여러 개 뚫린 양철 컵 바닥에 압지를 대고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은 커피 업계에 혁신을 일으켰고
마침내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종이 커피필터로 시작한 작은 기업은 커피메이커, 각종 원두커피 등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났다.
흔히 대일밴드라고 부르는 제품의 정확한 이름은 밴드에이드로, 발명 당시 제약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밴드에이드는 존슨앤존슨의 탈지면 구매 담당자인 얼 딕슨의 아내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요리를 하면서 손을 베이거나 화상을 입곤 한 아내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 그는 ‘더욱 간편한 붕대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시작했고 그 해답으로 상처를 입을 때마다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붕대를 떠올렸다. 작은 메모지 크기의 모양으로 미리 붕대를 자른 후에 기다란 반창고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붙였다. 그 후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 붕대 위에 크리놀린을 덧입혔다. 어느 날 그는 회사 상사에게 새로운 붕대 사용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고, 1921년 회사는 접착식 붕대를 상품화하기로 결정했다. 얼 딕슨은 자신의 발명품으로 단숨에 부회장 자리에까지 올랐고, 밴드에이드는 희대의 발명품이 되었다. 훗날 밴드에이드는 다양한 형태와 디자인으로 진화하며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으로 거듭났다. 현재는 항생 처리 기술을 입은 제품부터 캐릭터나 그림이 그려진 어린이용 제품까지 생산되고 있다.
마트 대부분의 상품에 붙어 있는 바코드는 유통가에 혁명을 일으킨 발명품으로 불린다. 가는 막대 여러 개가 도열된 작은 네모 안의 코드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스캐너에 가져다 대면 삑 소리와 함께 포스 화면에 상품 정보가 입력된다. 1940년대, 미국의 슈퍼마켓은 한 달에 한 번씩 매장 문을 닫고 전 직원이 제품별 판매랑과 재고 수량을 일일이 확인하곤 했다.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던 야채 가게 주인은 한 공과대학을 찾아 대학원장에게 상품의 정보를 자동으로 관리하는 기술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이를 흥미롭게 생각한 대학원생은 친구 노먼 조지프 우드랜드에게 기술 개발을 제안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드랜드는 모스 부호와 영화의 사운드 트랙(필름 양 끝에 잉크를 발라 소리에 따라 빛의 투명도에 변화를 주고, 이를 전자적으로 읽어 들여 소리를 발생시키는 기술)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표기 방법을 개발하고 1952년에 특허를 출원했다. 그 이후에도 연구는 계속되었다. 훗날 그는 IBM에 입사해 연구를 거듭하며 바코드의 새로운 형태는 물론 바코드를 읽는 스캐너 시스템까지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 바코드 시스템은 1974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슈퍼마켓에서 처음 사용되면서 유통 혁명의 물꼬를 틔웠다. 집념에 가까운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