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윤진아 Photo. 정우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마을. 옛 정취 가득한 한옥 일주대문 앞에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멈춰진다. ‘제비도 쉬어가는 집’이라는 뜻의 ‘연안재’라는 이름부터 휴식이 되는 듯하다. 쉼과 삶이 어우러지는 곳, 산 깊고 물 맑은 강원도 화천에서 최도현 차장 가족의 새 추억을 담아왔다.
왼쪽부터 최도현 차장, 아내 김두나 씨, 아들 최봉진 군
나지막한 담 너머 풍경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바람에 일렁이는 너른 들판, 이름 모를 농부들이 밤낮으로 일궜을 곡식,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넉넉한 웃음을 선사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우리네 마음속 외갓집 풍경 그대로다. 유년시절 최도현 차장의 외갓집은 경북 영덕에 있는 전통한옥이었다.
“소 여물도 직접 주고 아궁이에 불도 지피던 진짜 시골집이었죠. 툇마루에 누우면 나무에서 올라오는 청량한 감촉이 참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나요. 얼마 전 우리 가족 최애 프로그램인 <1박 2일>에서 한옥 잠자리 복불복 장면이 나왔는데, 한옥 경험이 없는 아들이 눈을 빛내며 유심히 보더라고요.”
누구보다도 여행에 진심인 사람들이지만, 올해 가족 여행에는 희한하게 비가 따라다녔다. 여름 캠핑 땐 화로 불멍 도중 비가 와 연기도 좀 마셨고, 집에 돌아와 텐트 말리느라 고생도 꽤 했단다.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비 예보가 있지만, 이번만큼은 걱정 대신 기대가 크다.
“대청마루에 앉아 빗소리 듣는 게 한옥스테이의 꽃이거든요.(웃음) 아파트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할, 어릴 적 제가 사랑해 마지않던 추억을 아들에게도 남겨줄 수 있을 것 같아 흥분됩니다. 아까 짐 풀고 나서 산책 삼아 동네 한 바퀴 돌고 왔는데, 물소리를 따라 걷다 만난 계곡물도 정말 깨끗해 놀랐어요. 공기가 좋은 청정지역이라 여름엔 반딧불이가 잘 보인다니, 내년 여름에도 꼭 다시 와보려고요.”
인심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한 아름 갖다주신 군고구마에 봉진이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달콤한 냄새를 맡은 고양이 일가족이 인사하듯 줄지어 나와 꾹꾹이와 냥펀치를 번갈아 선사하는 통에 또 한 차례 웃음꽃이 피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햇볕 쬐며 노닥노닥 차 한 잔 마시고 있자니 ‘이게 힐링이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최도현 차장은 삼송지사 운영부에서 환경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수원에서 삼송까지 출퇴근 거리가 꽤 되다 보니 집안일과 육아를 대부분 와이프가 전담하다시피 했어요. 도움을 많이 못 줘 미안하고, 불평 없이 잘 챙겨줘 고마울 따름이죠. 표현이 서툴러 마음을 잘 전하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마음만큼 더 많이 노력하려고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참 재미없게 하는 재주가 있는데요.(웃음) 아내는 그런 제 얘기를 늘 귀담아들어주고, 저를 많이 믿고 따라주는 고마운 사람이죠.”
고등학교 지리 교사인 아내 김두나 씨는 “말은 저렇게 해도, 속정 깊고 세심한 남편에게 잔소리 한 번 할 일 없었다”며 최도현 차장과 함께하는 인생 여정 매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즐겁다고 했다. 내년이면 초등학교 최고학년이 되는 봉진이는 아빠 엄마를 사이좋게 닮았다. 계획적이고 책임감이 강하면서도 밝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열두 살 봉진이의 꿈은 인공지능 전문가다.
“레고 조립과 자동차 로봇 만들기를 좋아해요.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끈기 있게 끝까지 해내더라고요. 맞벌이 부모의 부재를 채워줄 학원 일정도 야무지게 소화해내고, 만반의 수업 준비는 물론 학습태도가 좋다고 선생님들이 칭찬하셔서 걱정을 덜었어요.”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며 담벼락 아래 줄지어 서 있는 장독대까지, 넓은 마당을 뛰어다니던 봉진이의 발길이 여러 번 멈췄다. 반나절 만에 시골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한 아들에게 부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 자연의 혜택을 실컷 누리게 해 주고 싶다.
운이 좋으면 다람쥐나 노루를 구경할 수도 있다는 말에 봉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광활하게만 느껴지던 자연이 한층 가까워지는 공간, 시골에서는 아이들의 모든 상상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마당 가득 쌓인 흙이 곧 스케치북이고, 때를 모르고 피어난 야생화를 구경하다 꽃반지를 만들 수도 있다. 나무와 흙, 새가 있는 공간에서 그냥 뛰놀게 하면 되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 엄연한 교육의 일부라는 최도현 차장의 이야기에 힘이 실렸다.
아직 하루가 다 끝난 게 아니다. 계곡에서 물수제비를 뜨다 해가 지면 별 구경도 하고, 따뜻한 온돌 아랫목에 누워 책도 읽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보드게임도 할 계획이다. 자연의 생태 주기에 기꺼이 보조를 맞추며 오랜만에 가족의 손을 꽉 잡아본다. 손에 손 맞잡고 시골길을 거니는 최도현 차장 가족에게 청량한 산바람이 반갑다는 듯 악수를 건넨다.
수령 100년의 느티나무 ‘거례리 사랑나무’가 화천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햇살 좋은 날 따사로운 빛을 뿜어내는 풍경도 아름답고,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은 물안개가 자욱해 운치 있다. 북한강 자전거 도로와 연결돼 라이딩 도중 잠시 쉬어가기에도 그만이다.
강원 화천군 하남면 거례리 514-1
천문대가 있는 해발 1,010m 광덕산 정상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은하수 촬영이 가능한 무공해 청정지역이다. 웅장한 산세 속에 우주의 신비와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광덕산에서 휴전선까지는 직선거리로 20여 km에 불과해 북녘땅도 지척에 보인다.
강원 화천군 사내면 천문대길 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