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난 : 마음 채움

‘나’라는 식물을 키우기 위한
발돋움

Text. 김은주(작가) Illust. 다나

발돋움은 작다. 발돋움은 멀리 뛰기도 아니고, 빨리 뛰기도, 높이 뛰기도 아니다. 있는 자리에서 발끝에 힘을 주고 내 몸을 들어올리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 작은 발돋움으로 우리는 크고 작은,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릴 적 동갑내기 친구와 키재기를 할 때 까치발을 들어 하는 발돋움. 엄마가 시장에 간 후 높은 찬장에 몰래 숨겨둔 과자를 꺼낼 때 하는 발돋움…. 이 작은 발돋움으로 우리는 재미있는 경쟁을 하고, 맛있는 것을 꺼내먹을 수 있고, 흥미로운 풍경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얼마 전 출간한 <나라는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라는 책의 주제가 발돋움과도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늘 유해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창밖 미세먼지와 눈에 먼지 같은 사람, 피부를 해치는 스트레스와 야근, 나를 아는 혹은 잘 모르는 사람이 주는 뾰족한 상처가 되는 말…. 이러한 유해한 것들에 둘러싸인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나는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고 돌보고, 물을 충분히 주고 햇볕을 쪼이고, 시든 잎을 잘라버리고 마음의 새순을 기다리며, 멀리 뛰기도 빨리 뛰기도 높이 뛰기도 아닌, 작은 발돋움을 할 수 있다. 매일 식물을 가꾸듯 조금씩 더 나은 나를 가꾸는 ‘셀프가드닝’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내일을 위한 발돋움’이 아닐까?

인생의 발돋움을 위한 특별한 시기는 필요하지 않지만 식물이 자라기에 좋은, 날이 따뜻해지는 봄날을 적당한 핑계로, 적절한 기회로, 근사한 배경으로 삼을 수는 있다. 핑계와 배경은 준비되어 있지만 일상에서 어떻게 발돋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라는 식물을 가꾸는 몇 가지 ‘셀프가드닝 프로젝트’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셀프가드닝 프로젝트는 일상의 여러 영역에서 적용할 수 있으며 총 7가지 단계 중 아래 소개한 몇가지 단계와 프로젝트들을 참고한다면 쉽게 나만의 셀프가드닝을 시작할 수 있다.

Step1 씨 뿌리기

첫 번째 단계는 나는 어떤 식물인지 알고 내면의 싹을 틔우는 단계이다. 나를 알아가는 방법 중 하나는 스스로에 대한 사색도 있겠지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자기 객관화이다. 그럴 때에는 간단하게, ‘내가 가는 장소 지도’를 만들어 보자.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는 내가 입은 옷에서 드러나지만 진짜 내 모습은 내가 자주 가는 장소에서 드러난다. 도서관, 근처 호수, 핫한 카페, 친구 집, 마트, 서점, 빈티지 소품 가게…. 요즘 내가 자주 가는 장소,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 벗어나고 싶은 장소, 떠나고 싶은 장소는 어디일까? 그 목록들을 작성해 보자.

Step2 적당한 물주기

인생이 버거울 때는 커다란 결정이 아닌 매일의 작은 실천이 도움이 된다. 매일의 작은 실천을 위해 버킷리스트가 아닌, ‘재킷리스트’를 한 번 작성해보자. 재킷리스트는 지금 꺼내 입지 않으면 입을 때를 놓치는 봄날의 재킷처럼, 더 늦기 전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의 리스트’를 뜻한다. 나만의 재킷리스트를 노트에 적어 하나씩 실천해 보자.

Step3 시든 잎은 잘라내기

미워하는 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나를 자유롭게 한다. 작가 알랭드보통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기분 좋지 않은 감정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했다. 직접 상대에게 독설을 내뱉는 대신 창의력을 불태울 수도 있다. 내 마음에 가시를 돋게 하고 나를 시들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 대해 후련한 독설일기를 써보자. 나쁜 기분을 흰 종이에 옮겨 적으면 마음은 다시 정화된다.

Step4 나비와 벌, 별과 조우하기

좋은 관계는 나의 세계를 한 뼘 더 자라게 한다. 나비에게도 취향이 있다. 호랑나비는 라일락, 산초나무, 솔체꽃, 엉겅퀴를 좋아하고, 흰 나비는 유채꽃, 배추꽃, 무꽃, 민들레꽃을 좋아한다고 한다. 나비에게 저마다 맞는 꽃의 색과 향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저마다 맞는 색과 향을 지닌 사람이 있다. 몇 번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향한 문을 닫을 필요는 없다. 나비가 우아한 날갯짓으로 풀밭을 날아다니다 결국 쉴 곳과 먹을 것을 동시에 발견하는 것처럼, 도시의 사람 숲을 거닐다 보면 나에게 편안한 쉴 곳이 되는, 나아갈 에너지를 주는 내 취향의 사람들, 꽃의 꿀 같은 누군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일상 속의 발돋움을 위한 셀프가드닝 프로젝트와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해보았는데, 그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 나만의 프로젝트를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발돋움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은 내가 가장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발돋움을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무게를 들어 올리고, 그 무게를 견디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무게 안에는 내가 가진 두려움의 무게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두려움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발돋움을 할 때 발목과 허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향한 크고 작은 발돋움에는 원래 약간의 긴장이 동반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잘 이용한다면, 그 두려움이라는 무거운 감정은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가볍게 데려다줄 위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날씨는 점점 따뜻해지고, 새싹은 자라고, 꽃은 피어나고, 내가 발돋움하기 위해 서 있는 겨우내 얼어있던 이 땅도 적당한 온도로 녹고 있다. 내 몸무게를 들어올려, 엄마의 찬장에서 맛있는 과자를 꺼내먹듯, 약간의 긴장을 즐기며 인생의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발견할 작은 발돋움의 계획들을 세워보자. 이 계절 조금 더 자라난 나라는 식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은주

최근작으로 4개국에 출간한 베스트셀러 에세이 <나라는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가 있다. 프랑스에서 몽골까지, 유럽, 아시아 12개국 10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1cm 시리즈〉는 여러 국가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세계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10년 이상 제일기획, TBWA의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책과 강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를 위한 ‘더 나은 일상의 가드너’로 활동하고 있다.